[뉴스룸에서] 중국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

입력 2022-08-22 04:07

2013년 중국 CCTV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후관리(AS)를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삼성전자는 중국 내에서 20%가량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수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0%대까지 추락했다.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비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나섰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삼성전자의 자리를 잠식해갔다.

반등할 가능성도 여의찮다. 중국은 앱스토어 등 구글의 주요 서비스를 쓸 수 없다. 대신 중국 업체들이 제공하는 별도의 앱스토어를 쓴다. 저작권을 무시하는 불법 복제 콘텐츠도 버젓이 올라와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하는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을 공략하자고 동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폴더블폰이 새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샤오미 등이 잇달아 아류작을 내놓으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졌다. 완성도는 삼성전자에 비하지 못하지만 완전히 대체 불가능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10일 새로운 폴더블폰을 발표하자 샤오미는 다음 날 바로 폴더블폰 신제품으로 응수했다.

중국에 진출한 다른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 등 한국 제품 보이콧이 노골화하면서 한국산의 인기는 급락했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중국 시장 점유율이 1%로 지난해(2%)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중국 사업 비중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마지막 중국 매장인 청두점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하기로 했다. 한류와 함께 인기를 끌었던 화장품·패션 업체들도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중 무역수지도 악화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했고, 이달 들어서도 1~10일까지 8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유지된 대중 무역수지 흑자도 더는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미국은 중국과 선을 그으라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칩4’ 동맹 참여 요구가 대표적이다. 미국 없이 반도체 사업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중국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유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을 앞으로도 유지하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첨단 소재나 중간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것도 어려운 요소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수입액 중 중간재 비중이 50.2%로 절반을 넘었고, 중간재 수입국 중 중국 비중이 28.3%로 가장 높았다. 중국에서 중간재를 들여와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게 현재 우리 기업의 보편적 방식이다.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키면서 중국산 배제를 사실상 명시했다. 배터리 완성품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재도 중국산을 쓰지 말라는 의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전구체 91.8%, 양극활물질 96.7%, 인조흑연 91% 등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만큼 충분한 양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공급망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반도체처럼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무기’를 가지면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전 세계가 소재부터 첨단 기술까지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무기로 내세운다. 내재화된 기술이나 천연자원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와 민간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해야 할 때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