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8월 15일을 ‘종전의 날’이라고 부르며, 매년 행해지는 두 가지 행사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전국전몰자추도식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다. 이날을 전후로 언론은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특집기사를 방영하거나 보도한다. 올해 이 기간 중의 일본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위화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행한 연설에 대한 위화감이다. 역대 일본 총리는 ‘종전의 날’ 연설에서 당파를 초월해 가해 책임과 이에 대한 ‘깊은 반성’ ‘애도의 뜻’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대상이었던 아시아 제국(諸國)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반성도 당연히 없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연설 내용을 답습한 결과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전후 일본을 ‘평화국가’라고 정의했다. 전후 일본이 미·일동맹하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해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평화국가로 불리는 이유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반성하에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선언을 제9조를 통해 표명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가해 책임과 반성 등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평화국가 운운하는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된 위화감도 있다. 전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도쿄재판의 판결을 수락하고, A급 전범의 전쟁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침략전쟁을 미화하면서 그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총리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이런 역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총리나 정치가가 매년 8월 15일에 참배한다면, 그 정치가의 역사 인식은 비판받겠지만 반대로 신념이 있는 정치가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8월 15일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참배한 이후 총리의 8월 15일 참배는 없다. 아베 전 총리도 한 번 참배했지만 8월 15일은 피했다. 올해는 각료 3명이 참배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공물을 사비로 봉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자신의 역사 인식에 대한 국내외 비판을 의식해 참배는 하지 못하고, 유족회나 보수층에 대한 어필을 위해 공물이라도 봉납하려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러면서까지 굳이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위화감이 든다.
마지막으로 8월 15일 전후로 TV나 신문이 편성한 특집 보도에서 느끼는 위화감이다. 그것은 주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각 도시부를 목표로 한 공습, 오키나와에서의 지상전 등에 의해 희생된 ‘많은’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사실이다. 전쟁으로 인한 희생과 고난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논리도 이해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침략으로 ‘더 많은’ 아시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역사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해야 되지 않을까.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을 행한 가해국으로서의 기억은 잊고 피해자로서의 일본인만을 기억하려는 최근 일본의 모습에 위화감을 금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발언했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를 방치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도 위화감을 느끼게 한 일본과의 관계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참 답답하다.
이상훈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