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본다. 나에게 눈, 코, 입이 있다. 그리고 표면에서 그것들을 연결하는 피부가 있다. 피부 아래에 근육이, 근육의 틈으로 흐르는 피와 흰 뼈가 있다. 감정을 느끼면 이 모든 부위들이 상호 작용해 어떤 표정을 구축한다. 나의 표정이 작동하는 방식은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으로부터 학습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서로에게 배운 표정들이 세계의 얼굴 위에 만연하고, 상대의 얼굴이 움직이는 방식을 마주하며 감정을 나눈다.
산책하던 개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개를 향해 웃는다. 호의를 알아차린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개의 눈은 빛나고 입을 벌리며 웃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개에게도 눈, 코, 입이 있다. 촘촘한 털 아래에 피부와 근육, 그 사이로 흐르는 피와 희고 단단한 뼈가 있다. 개는 얼굴을 움직여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나는 개의 표정으로 개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은 지 삼 년 정도 됐다. 윤리적 각성에 의해 시작한 채식은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려다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됐다. 숟가락 위에 올라와 있는 살점이 나와 같은 구조로 이뤄진,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겪으며 살아온 존재의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감각으로 들이닥치자, 그대로 식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삶이었던 고기와 나 사이에 견고하던 벽 하나가 무너진 것처럼, 내가 보지 못하는 동안 그 너머에서 살아 있었던 동물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비로소 맞닥뜨리게 됐다.
거울 속 나의 얼굴과 어떤 비인간 동물의 얼굴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떠올린다.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바라게 된다. 인간의 손으로 한 마리의 동물도 죽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는 일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니기를. 기술의 발달이 여러 생물 종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의 겸허함과 타자에 대한 도리와 함께하기를.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