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채 자전거 페달 밟으며 심장 초음파 검사로 심부전 진단

입력 2022-08-23 04:06
누운 채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심장 초음파검사를 받는 장면. 운동으로 자극을 줘서 이완기 심장 기능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온몸에 혈액을 원활히 순환시키지 못하는 상태가 심부전이다. 나이들수록 심장근육 기능이 약해져 고령화 시대에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심부전의 대표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처음에는 운동 중에 또는 경사진 길을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 몸을 움직일 때 증상이 나타나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잠자는 중 갑자기 숨이 차서 깬다거나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많은 환자들이 심부전을 정상적인 노화 현상으로 생각해 조기 진단을 받지 않고 매우 위중해진 뒤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심부전을 평가하기 위한 핵심 검사법은 심장초음파다. 실시간으로 심장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해부학적 구조 이상, 심장 기능, 심장 내 압력 등을 파악한다. 심장초음파에서 측정하는 여러가지 심부전 지표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좌심실 박출률’로, 심장의 수축 기능(쥐어짜서 혈액을 내보냄)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부전 환자 중에는 이런 좌심실의 펌프 기능은 정상이거나 약간 감소한 정도지만 이완(팽창) 기능에 장애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신체 안정 시에는 특별한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다가 걷기나 운동 등 심장에 부하가 가해지고 심박수가 빨라지는 상황에선 이완 기능이 악화된다. 따라서 운동 중 심장의 이완 기능을 평가할 수 있다면 확연한 이상이 관찰돼 심부전 진단이 용이하다.

하지만 일반 심장초음파 검사는 환자가 누운채로 안정된 상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아 호흡곤란 증상을 유도할 수 없고 그에 따라 증상 발현 순간의 원인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운동 중 심장 변화를 관찰하고 심부전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심도자(카테터)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문제는 가느다란 관을 혈관에 집어넣어 심장의 구조나 상태를 살피는 침습적 방식이어서 입원과 통증 등 환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20여년 전 국내 의료진이 비침습적으로 심장의 이완기 기능을 평가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하종원(심장내과) 병원장이 주인공이다. 하 원장은 1999년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수 당시 누운 채로 자전거 페달을 밟도록 해 호흡곤란 등 운동 효과를 내는 초음파검사 장치를 개발했다. 안정된 상태에선 혈류지표 등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심부전이 강력히 의심되는 상황에서 운동이라는 자극을 줘서 이완기 심장 기능을 역동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 원장은 22일 “인위적으로 심장에 운동 효과를 주면서 심장판막의 변화 양상과 심장 내부 압력의 상승 정도 등을 더 자세히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은 2003년 국내 처음 이완기 부하 심장초음파 검사 도입 이후 최근까지 2588건을 시행했다. 전체 검사 건수에서 호흡곤란의 원인이 심장 이완 기능 문제로 파악된 것은 50%안팎에 이른다.

그동안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전 세계에 노하우를 꾸준히 전수해 왔고 미국과 유럽 심초음파학회는 이 검사법을 심장질환 진료지침에 포함했다. 국내 연구자가 개발한 검사법으로는 처음이다. 국내에서도 서울아산병원 등 여러 의료기관이 도입해 쓰고 있다. 하 원장은 “고령화에 따라 심장 노화 등 심장질환이 다양해지는 추세에서 이완기 심장기능 장애 증상을 유발해 평가하는 검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