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자 발생지 ‘메소포타미아 문명’ 한국 나들이

입력 2022-08-21 19:20
‘구데아 왕의 상’(기원전 3000년쯤·왼쪽)과 쐐기문자로 쓴 ‘마르둑 찬가’(기원전 1000~1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퀴즈 하나. 인류 최초로 문자를 발명한 문명은 어디일까. 그리스도 이집트도 중국도 아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기원전 3000년대부터 500년대까지 중동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 비옥한 지대, 지금의 튀르키예(터키), 시리아, 이라크 지역에 융성했던 문명이다. 이곳에서 최초의 도시가 만들어지고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 문자가 발명돼 경제 활동의 도구로 사용됐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으로 꾸며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다. 전시 제목이 보여주듯 문자의 목적인 기록에서 출발해 점차 미술로 향하며 문명의 축적을 보여주는 구조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나온 쐐기문자, 원통형 인장 등이 기록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다. 종이나 죽간이 아니라 점토판을 기반으로 한 게 흥미롭다. 갈대 펜으로 한 획 한 획을 찍어 글자를 쓰는데, 그 모양이 쐐기를 닮아 쐐기문자라 한다.

초기는 경제 활동과 관련된 쐐기 문자를 볼 수 있다. 점토판 앞뒷면에는 양조업자가 수령한 보릿가루와 맥아의 수량이나 소송 판결문이 기록돼 있다. 수호신 마르둑을 찬양하는 노래를 새긴 점토판도 볼 수 있다. 원통형 인장은 이 문명만의 독특한 도장 문화다. 실감개처럼 생긴 원통형 인장에 그림을 반전시켜 새긴 뒤 점토처럼 말랑말랑한 재료 위에 인장을 굴리면서 이미지를 남기는 형태다. 인장 기능뿐 아니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주술적 기능까지 했다.

미술 문화도 볼 수 있다. 그리스 문명이 이상화된 리얼리즘의 극치를 이루는 것과 달리 메소포타미아에선 초상미술에서도 대상을 닮게 표현하지 않았다. 기원전 2090년쯤 제작된 ‘구데아왕의 상’이 좋은 사례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게 눈에 띈다. 당시에는 어깨가 튼튼하고 상처가 없는 신체 건장한 통치자 상이 요구됐는데, 이를 과시하기 위해 한쪽 어깨를 드러낸 도상이 제작된 것이다. 조각상은 이처럼 통치자가 지향하는 이상적 속성을 조합했기 때문에 명문이 있어야만 어느 왕의 조각상인지 알 수 있다. 구데아왕의 초상 조각 하반신에 글자가 새겨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친절한 전시 구성 덕분에 배경 지식이 없어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요 성취를 일별할 수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