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채무를 탕감해주는 ‘새출발기금’ 정책을 둘러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의 추진 의지는 굳건하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영업제한 조치로 피해를 봤으므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소상공인 채무를 원활히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출발기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법원 개인회생은 필요한 절차를 밟는 데 6개월 이상 필요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1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초부터 올해 상반기 말까지 금융권 개인사업자대출은 304조원 폭증했다. 영업 부진을 대출로 충당한 결과로 풀이된다. 2019년 1억6900만원이던 소상공인 연평균 매출액은 이듬해 1억5700만원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비교적 잠잠해진 지난해(1억6400만원)에도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채무 조정 대상은 코로나19 피해 차주로 제한된다”면서 “정부 방역 조치로 영업을 하지 못한 데 따른 소상공인 피해를 조금이나마 보상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현존하는 제도로는 소상공인 채무를 조정해주기 어렵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채무 조정 프로그램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1인 기업이더라도 법인을 꾸려 사업체를 운영했다면 신복위 지원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2020년 기준 법인은 62만8000여곳으로 전체 소상공인의 9%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91% 소상공인은 개인 사업자로 신복위를 이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신복위의 주된 조정 대상 채무는 개인 신용대출로 담보대출의 경우 주택만 인정한다. 식당 주인이 영업용 냉장고를 담보로 받은 대출은 조정이 불가능하다.
소상공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법원 개인회생 절차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신청한 뒤부터 면책을 받기까지 밟아야 하는 절차가 7단계나 된다. 신청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개시가 결정되고, 개시 결정일로부터 2개월간 채권 이의제기 기간을 두는 등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린다. 변제 계획안부터 시작해 각종 서류를 준비하느라 이곳저곳 뛰어다녀야 해 영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새출발기금은 채무 조정 대상 담보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조건을 충족했다면 신청한 다음 날부터 추심·압류가 중단된다. 다른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근 들어 식당 매출액이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영업을 계속할 의지가 있는데 냉장고에 ‘빨간 딱지’가 붙어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날 새출발기금의 원금 탕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금융권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설명회를 열었다. 금융위는 금융권 관계자들에게 “모럴 해저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산보다 빚이 많은 경우에만 원금을 감면할 예정이며 자산을 숨겼다가 적발되면 채무 조정 혜택 전체를 무효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