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부일구’(仰釜日晷)는 독특한 반구 형태의 조선시대 해시계다. 이와 달리 지구본처럼 둥근 휴대용 해시계가 처음으로 확인돼 미국에서 귀환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소형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를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18일 밝혔다.
동과 철을 재료로 한 일영원구는 두 개의 반구가 맞물린 형태인데, 구의 지름이 11.2cm, 전체 높이가 23.8cm이며 비스듬한 지구본처럼 생겼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형태로 조선시대 과학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일영원구를 사용할 때는 추를 달아 늘어뜨린 다림줄로 수평을 맞춘 뒤, 나침반으로 방위를 측정해 북쪽을 향하게 하고 위도를 조정한다. 길쭉하게 생긴 T자형 횡량(橫粱)과 태양이 일직선이 되는 순간 그림자가 횡량 아래에 파인 틈으로 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시간과 각(刻·15분)을 확인한다.
문화재청은 “시간을 확인하는 영침(影針·그림자 침)이 고정돼 한 지역에서만 측정할 수 있던 앙부일구와 달리 일영원구는 어디서든 시간을 측정하도록 제작됐다”며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한쪽 반구에는 12가지 동물로 이뤄진 십이지(十二支) 표시와 96칸의 세로 선이 있다. 하루를 12시 96각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국보로 지정된 물시계 ‘자격루’와 자동시계 ‘혼천시계’에도 십이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장치가 있다. 다른 쪽 반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했다’는 명문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 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만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과학 유물이라는 점도 가치를 높인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 재위기에 활동한 무관이다. 그의 아들 상운(尙澐)은 청나라에 파견돼 전화기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네 개의 꽃잎 형태로 제작된 받침에는 용, 선박, 글자 ‘일’(日) ‘월’(月) 등이 상감돼 있는 등 주조 기법과 장식 요소도 돋보인다.
해당 경매업체의 누리집에는 판매가가 6만8750달러(약 9000만원)로 돼 있다. 1940년대 일본에 주둔한 미군 장교의 유족에게서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영원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을 통해 19일부터 공개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