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자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IRA에 전기차 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한다는 시장 관측과 달리 업계 반응은 조심스럽다. 이 관계자는 “IRA는 ‘탈(脫)중국’을 하라는 메시지와 같다. 중국으로부터의 공급망 독립이라는 큰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고 9일 진단했다.
배터리 업계는 IRA에서 ‘혜택 예외 조건’에 주목한다. IRA는 미국 중심의 전기차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기차 산업 지원을 포함하는데, 여기에 단서 조항이 달렸다. 2024년 12월 31일 이후 출시 등록하는 차량의 배터리에 들어간 특정광물이 ‘해외 우려국가’에서 추출되거나 제조, 재활용을 하는 경우 혜택 대상에서 제외한다. 해외 우려국가는 사실상 중국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2023년까지 배터리 핵심광물의 40%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생산된 것으로 쓰도록 한다. 이 비율은 2024년 50%, 2027년 80%로 높아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배터리의 원료와 부품을 중국에서 가져오는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2024년까지 중국산 원자재를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세제 혜택에 따른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감축법안 통과가 유리할지 아닐지는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대안을 찾느냐, 찾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소재·부품 공급망 구조를 전면 재조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은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지난달에 발표한 전기차 배터리의 글로벌 공급망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전체 리튬이온 배터리의 4분의 3을 생산한다. 핵심 소재로 꼽히는 양극재와 음극재 생산량도 각각 70%, 85%에 이른다. IEA는 2030년까지 대부분 공급망이 중국에 잔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 역시 중국산 광물·소재 의존도가 상당하다. 특히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구성하는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혼합물)와 양극활물질(전구체에 리튬을 결합한 것)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는 91.8%, 양극활물질은 96.7%에 달했다. 음극재에 활용하는 인조흑연도 중국산 수입 비중이 91.0%에 이른다.
수입액은 증가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대중 무역적자 원인과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표하고 2차전지 원료가 되는 기타정밀화학원료의 대중국 수입액이 지난해 상반기 38억3000만 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72억5000만 달러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중간재인 기타축전지의 수입액도 지난해 상반기 11억1000만 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21억80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냐 기회냐를 떠나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환경 규제가 낮기 때문에 정제나 가공에서 독점적 시장 지위를 갖고 있었다. 중국 외 다른 나라가 부상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원자재 리스크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에서 공급망 재편에 비용이 꽤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