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사퇴하면서 교육부는 또다시 격랑에 휘말리게 됐다. 교육 수장 공백으로 반도체 등 첨단 분야 인력 양성과 이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고등교육 예산 확충,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준비, 고교학점제 보완, 유보 통합 등 각종 교육 현안들은 당분간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다만 ‘만 5세 입학’을 골자로 하는 학제 개편안은 백지화 수순을 밟을 예정이어서 학부모 반발 등 교육 현장 혼란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교육부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교육 수장 자리가 또다시 공석이 돼 조직 개편 작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교육부 직원은 “내가 어떤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될지 불투명한데 일손이 잡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어차피 부총리 리더십이 무너진 상태여서 빠른 사퇴가 답이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부는 박 부총리 사퇴와 ‘만 5세 입학’ 철회를 통해 사태가 일단락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다른 교육 정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장상윤 차관의 부총리 대행 체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일단 다른 부처 장관들이 모이는 사회관계장관회의는 또다시 공전할 것으로 보인다. 차관 대행 체제로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재양성 정책을 비롯해 각종 사회 현안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중 하나가 제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특히 보건복지부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유보 통합의 경우 두 부처 수장 모두 공석인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정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수도권 대학들의 첨단분야 학부 정원을 늘려 효율적으로 인재를 확충할 계획이다. 강하게 반발하는 비수도권 대학들에는 재정지원을 두껍게 하는 카드로 달래겠다는 입장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부총리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대학 사회를 설득해도 쉽지 않은 사안이다.
비수도권 대학 등에 투입하는 예산은 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개편해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초·중등 교육 예산으로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떼어내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가칭)를 신설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동생 돈 빼앗아 형·누나 준다’는 비판이 유치원과 초·중등교육 쪽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보수 시·도교육감들이 모두 반발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국회 설득 작업도 여의치 않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고 이후 교육부와 역할을 분담하는 작업 역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교육위는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비롯해 대학 입시, 교원 수급 정책 등 교육부가 그동안 담당해온 주요 업무들을 가져가게 된다. 대학입시 업무의 경우 교육부와 국가교육위가 업무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교육부의 담당 업무가 달라지는 만큼 조직개편과 후속 인사 역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가교육위 위원 구성과 사무국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 이뤄지는 와중에 부총리 사퇴라는 돌발 변수가 생긴 것이다.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와 고교 체제개편 등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석열정부는 고교학점제를 보완해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최근 고교학점제 점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보완할 부분에 대해 전문가와 학교 현장 의견 수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의 일반고 전환 등 고교체제 개편 논의도 원점에서 재검토될 전망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