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결국 직을 내려놨습니다.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만 5세 입학’ 논란에 따른 경질로 봐야겠죠.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달아나다 신발이 벗겨지는 장면이 공개됐을 때 그의 운명은 결정된 듯합니다. 벗겨져 나뒹구는 그의 신발 한 짝처럼 땅에 떨어진 ‘교육 수장’의 리더십으로는 ‘교육 개혁’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어려웠으니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맞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박 부총리의 명을 재촉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갉아먹은 ‘만 5세 입학’은 어쩌다 발표하게 됐을까요. 복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내부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직후 교육부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없어질 부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줄곧 교육부 폐지를 주장해온 안철수 의원이 지명되자 교육부 내부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폐지 위기를 넘겼지만 김인철 후보자 낙마 과정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이후 교육부는 완전히 정권 눈 밖에 난 듯합니다. 특히 김인철 후보자 지명부터 낙마 사이에 교육부에선 ‘차관이 누가 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김 후보자가 비(非)교육부 인사이므로 차관은 교육부 출신이 될 거라는 ‘단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김 후보자는 여기저기서 난타 당하는데 교육부의 공직자들은 차관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기자들에게 이런 소문이 돌았는데 정권의 귀에 이런 얘기가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김 후보자가 사퇴하자 교육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습니다. 새 정부가 교육부를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로 여긴다’는 말까지 교육부 안팎에 나돌았죠.
결국 교육부 차관은 국무총리실 출신이 왔습니다. 이어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박순애 부총리입니다. 교육부 서열 3위 차관보에 기획재정부 출신이 지난 정부부터 일하고 있으니 교육부 서열 1~3위가 외부 인사로 채워진 셈입니다. 차기 차관보 역시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등에서 올 것이란 얘기가 파다합니다.
박 부총리는 취임 첫 기자회견부터 교육부 공직자들을 ‘개혁 저항 세력’ 중 하나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왜 당신을 임명했다고 생각하는가’란 취재진의 질문에 “교육 분야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그동안 국민이 진정 원하는 교육 서비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윤 대통령이) 생각한다. 교육과 이해관계가 동떨어져 있는 저를 통해 개혁의 추진력을 발휘토록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집권 세력이 교육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는, 교육부로선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두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하나는 교육부 공직자들은 ‘만 5세 입학’ 발표의 후폭풍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과거 정부 때도 교육부 내부에서 추진 검토와 백지화를 반복하던 사안이니까요. 다른 하나는 이들이 박 부총리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만 5세 입학’ 학제 개편안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간부급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대입하면 교육부 내부 토론 장면은 대충 그릴 수 있습니다. 교육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만 5세 입학’은 박 부총리의 오랜 소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스타 장관’의 꿈에 부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부 토론은 일방적으로 흘렀을 겁니다. 교육부 관료들은 ‘개혁 저항 세력’으로 찍히지 않으려고 했겠죠. 마음 한 켠에는 ‘우릴 그렇게 적폐로 몰더니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보자’는 심리가 발동했을 수도 있었겠죠.
그렇게 교육부의 축적된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합리적 우려, 이를 뒷받침해주는 과학적 조사·연구 결과들은 깡그리 무시됩니다. 결국 학제 개편안이 윤 대통령의 보고 테이블에 오르고 ‘오케이’ 사인을 받습니다.
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교육 현장을 아는 전문가는 없었습니다. 먼저 박 부총리는 행정학자입니다. 자녀들을 키워봤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일 뿐이겠죠. 장상윤 교육 차관은 국무총리실 출신이어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교육 이슈를 직접 다뤄본 일은 없습니다. 정부 부처들의 정책을 조율하는 ‘상전’ 노릇을 주로 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점은 등록금 이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 총장들이 모인 곳에서 등록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학생·학부모, 대학 등이 얽힌 등록금 이슈를 단순히 ‘규제 개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대통령실에서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사회수석 역시 교육 분야에선 ‘문외한’입니다. 안상훈 사회수석은 사회복지쪽 전문가입니다. 이상원 교육부 차관보 역시 기획재정부 출신입니다. 주로 타 부처와 조율해 사회부총리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만 5세 입학 논란은 이런 ‘선무당’들이 함부로 던지는 교육 정책들을 자의반타의반 ‘예스맨’이 된 교육부 공직자들이 말리지 못해 벌어진 사달로 보입니다.
교육부는 또다시 수장 공백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교육 정책은 공중에 ‘붕’ 뜨겠죠.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곤란합니다. 학생들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새 부총리의 덕목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시·도교육감들을 이끌 카리스마, 대학 개혁을 논할 수 있는 전문성, 교직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도덕성 등이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학부모 신뢰 회복이 급선무로 보입니다.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떡일 인물이어야 교육 개혁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