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공매도에 화내는 이유

입력 2022-08-05 04:07

삼성전자 주식 2500만여주를 3년간 규정을 위반해 공매도한 한국투자증권의 해명은 일부 납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시세 조종 목적이 아닌 호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단순 실수이며, 삼성전자 하루 거래량이 700만주이므로 주가에 실질적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 증권사의 설명이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이를 조사한 금융감독원도 ‘실수’라고 판단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화가 나 있다. ‘3년이 넘는 기간 실수가 반복된 게 말이 되느냐’ ‘금융당국과 증권사가 한통속이다’ ‘한투증권을 압수수색해야 한다’ 등 날 선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증권사 공매도를 전수조사하라’며 금융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개인투자자들은 왜 이렇게 분노할까. 문제의 핵심은 불신에 있다. 이번 한투증권 공매도 사태가 알려진 과정을 복기하면 불신이 어떻게 축적되는지 알 수 있다. 이 증권사가 공매도 규정 위반으로 10억원 과태료 처분을 받은 건 지난 2월이다.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는 2월 9일 회의를 열고 이 결정을 내렸다. 다른 공매도 규정 위반자 6곳에도 제재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금융위는 이를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이 정도 규모의 제재가 결정되면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을 알렸다. ‘외국 금융사의 공매도 규제 위반에 대한 증선위의 조치’(2020년 9월 17일) ‘금융당국은 무차입 공매도 위반 사항에 엄정히 대응하겠다’(2021년 2월 24일)를 보면 여러 제재 사례가 나온다. 그러나 2월 9일의 제재 결정은 보도자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금융위 홈페이지 ‘증선위 의결정보’에 내용이 있긴 한데 여기에도 ‘○○○○(주) 등 939개사 주식에 대한 공매도 제한 위반 조사 결과 조치안’ 한 줄만 적혀 있을 뿐이다. 결국 과태료 10억원 처분은 금융위와 이를 조사한 금감원, 한투증권 셋만 아는 비밀이 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이 대목에서 전 금융위원장이 한투증권 회장과 인척 관계여서 금융위가 봐준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한투증권의 지주사인 한국금융지주가 5월 16일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이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차입공매도 주문 시 공매도 호가 표시 위반’으로만 적혀 있다. 규정을 위반해 공매도한 시기가 언제인지, 어떤 종목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공매도가 이뤄졌는지는 여전히 ‘깜깜이’였다.

단서는 의원실이 낸 보도자료에서 나왔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13일 최근 12년간 불법 공매도 사례를 묶어 공개하면서 가장 큰 위반 사례로 ‘국내기관이 에스케이(주) 등 939개사 1억4000만주를 대상으로 중과실로 불법 공매도한 건’을 소개했다. 해당 기관이 한투증권이며 공매도 규정 위반이 삼성전자 등 주식에서 3년여간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뒤 언론 취재와 한투연의 정보공개청구에 의해 7월 말 드러났다. 증선위가 과태료 10억원 결정을 내린 지 5개월여 만이었다. 이런 과정은 개인투자자들이 왜 금융당국을 신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부정행위를 한 기관이 드러날 때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공매도에 관한 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당국이 대형 증권사의 부정을 숨겨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투증권의 공매도 규정 위반 보도 직후 서둘러 대책을 발표하고 불법 공매도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정부를 믿지 않는다. 불신의 원인은 불투명한 정보 관리에 있다. 금융위는 이제라도 한투증권 제재를 왜 제때 공개하지 않았는지 해명해야 한다.

권기석 경제부 차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