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강남구 한 편의점 앞에는 ‘미국 로또 복권, 평균 당첨금 1000억 이상’이라는 현혹성 광고 문구가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편의점 내 무인 단말기(키오스크)에서 미국 복권을 사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계산대에 놓인 태블릿PC에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한 후 복권 종류와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됐다. 결제를 마치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직원은 “전송된 링크를 누르면 복권이 보인다”며 “한번 가입하면 집에서 모바일로 구매해도 된다”고 안내했다.
최근 미국 복권 ‘메가밀리언’의 당첨금이 1조원 이상 치솟으면서 국내에서도 미국 복권 구입 수요가 증가하자 판매처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최근 경찰은 미국 복권 구매대행 키오스크 설치·운영 관련 불법 행위 단속을 위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법원에서 미국 복권 구매대행 행위의 위법성이 인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앞서 경찰은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의뢰를 받아 지난해 1월 미국 복권 중개업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강남에 중개업체를 차리고 가맹점을 유치한 A씨가 복표발매중개 위반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그는 2020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복권 5만9960장을 팔아 대행료로 3억2978만원을 벌었으며, 980여만원을 당첨금으로 지급했다.
서울중앙지법는 지난 4월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형법상 복표 발매는 국가만 할 수 있다는 이유다. A씨는 “구매대행 사업자일 뿐 복권사업자가 아니다”며 항소한 상태다.
당시 판결은 복권 구매대행 시스템이 아닌 사업자 개인에 대한 것이라 정부와 경찰이 이를 근거로 단속에 나서기엔 한계가 있었다. 사감위는 지난 5월 신고와 첩보 등 여러 경로로 중개업체들의 불법 행위를 수집한 뒤 경찰에 추가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경찰 수사는 금융거래내역 압수수색 등을 통해 구매자에게 당첨금을 전달하지 않는 행위, 키오스크 설치 가맹점주들의 피해 상황 등 해외 복권 중개시장 전반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전국에 400~500개의 중개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찰은 위조 복권으로 소비자를 기망하는 사기 범행도 주목한다. 실제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키오스크에서 위조가 의심되는 미국 복권이 발권된 정황도 나왔다. 정상 복권은 작은 숫자부터 오름차순으로 나열돼야 하지만 순서가 뒤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이를 수상쩍게 여겨 중개업체에 항의하자 새것으로 교체해줬다고 한다.
수사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 경찰서 7곳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 중 처음으로 지난 6월 관내 한 업체를 복표중개발매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수사 결과를 토대로 단속·규제 법령을 만들어 합동 단속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개업체들은 구매자가 원하는 번호를 미국 법인에 전달하고 복권 영수증을 스캔해 모바일로 제공한다. 1·2등에 당첨되면 직접 당첨금을 받으러 가야 하고 3등 이하는 중개업체가 전달한다. 장당 가격은 부가세, 구매대행 비용 등을 합쳐 5500원이다. 사감위 관계자는 “허가받지 않고 판매되는 복권이라 피해가 발생해도 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렵다”며 “현재로선 당첨금을 받고 자취를 감춰도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