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조모(40)씨는 오는 9월 미국 하와이로의 가족 여행을 계획했지만 치솟는 환율에 가슴을 졸이다 결국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지난 4월 현장 결제를 조건으로 일찌감치 숙소를 예약했지만 31일 기준 환율을 적용한 가격은 그때보다 약 94만원이 올랐다. 출발 일주일 전 잔금을 치러야 하는 항공료는 인당 20만원씩 비싸졌다.
조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못 간 신혼여행을 뒤늦게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미루게 됐다”며 “항공료 예산을 100만원이나 더 올려잡았는데 날이 갈수록 추가금이 계속 불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300원을 오르내리면서 조씨처럼 고환율 부담 때문에 휴가를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휴포자’가 잇따르고 있다. 결제 통화가 달러인 경우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베케플레이션’(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하루아침에 비용을 더 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임모(30)씨는 지난 13일 숙박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를 통해 일주일간 일정으로 75만원 상당의 국내 호텔을 예약했다. 예약 다음 날 카드로 결제했지만 결제액은 그새 2만원 더 올랐다. 결제 플랫폼이 해외 사이트를 통하면서 환율에 따른 추가 금액이 발생한 것이다.
환율과 함께 우상향 추세인 현지 물가도 해외여행을 단념케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오는 10월 몰디브로 2주간 신혼여행을 가기로 한 20대 예비신랑 한모씨도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식사 비용과 숙박비가 애초 여행을 계획했을 때보다 1.5배 가까이 올라 여행 경비 부담이 예상치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물가지표인 지난 6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8% 올랐다. 40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같은 달보다 9.1% 급등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