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1년 8월 초 31일간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장기 휴가에 익숙한 미 국민들조차 “대통령이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고 한마디 할 정도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 공습을 단행한 다음 날인 2014년 8월 9일부터 2주간 가족과 동부 휴양지에서 휴가를 만끽했다. 선거운동 기간 “대통령이 되면 휴가를 가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여름 자신의 소유인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17일간 휴가를 보냈다. 언행 불일치라는 비난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냥 쉬는 게 아닌 일하는 휴가(working holiday)”라고 응수했다.
우리나라가 서양과 가장 다른 문화 중 하나가 휴가 문화다. 특히 대통령의 휴가에 대해서 국민들은 엄격한 편이다. 대통령은 만기친람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리를 오래 비워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두 자리 일수 여름휴가는 언감생심이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휴가 취소나 중도 복귀를 당연시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수해 발생으로 휴가 간 지 하루 만에 복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여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휴가를 떠나자 야당은 “안보까지 휴가를 보냈다”고 질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대처와 두 아들 비리 연루로, 노무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해당 연도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주부터 취임 후 첫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경제가 위기이고 지지율도 바닥인데 무슨 휴가냐”란 비판이 적지 않다. 한 야당 정치인은 김건희 여사에게 “남편의 휴가를 반납하도록 조언하는 것이 진정한 내조”라고 충고했다. 아무리 인기없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365일 내내 일할 순 없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추세에 대통령만 예외여서도 안 될 것이다. 단지 푹 쉬면서 거창한 정국 구상을 하기보다 집권 두 달 만에 민심이 왜 이리 사나워졌는지를 곰곰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핵관들과 SNS로 시시덕거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