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목회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 아무 고민 없이 예수님을 믿었다. 초등학교 때 어느 날, 하교를 하니 문에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3개월분 전기요금이 청구되었고, 얼마 후에는 교회와 집의 전기, 전화, 가스까지 끊겼다. 가족들이 모두 나서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나도 신문과 우유 배달을 했다. 초등 2학년인 동생이 무거운 신문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돌며 배달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한집이라도 내가 더 돌리려 애쓰며 한 달에 꽤 많은 돈을 벌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새벽 일찍 뛰어 다니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생각으로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목회자인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었다. 전교인이 20명 정도인 개척교회의 목회자 자녀로 태어난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목회자인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친구들에게 아버지 직업과 교회를 철저히 숨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갈 때엔 혹시 친구들이 눈치챌까봐 모른 척 집을 지나쳐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가 오곤 했다. 내 소망은 아버지가 목회를 그만두는 것 뿐이었다.
그러다 중3 때, 아버지가 목회를 접고 경기도로 이사 간다고 했다. ‘아! 드디어 목회자 자녀에서 벗어나는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파킨슨병에 걸린 것이다. 몸의 감각이 둔해져 비빔밥도 혼자 비비지 못하고, 옷을 입고 벗는 것도 너무 힘들어 하시면서도 아파트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또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아버지에 관해 철저히 숨겼다. 그렇게 힘든 마음으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 입학 면접 때 무당, 조폭, 게임중독이었던 사람들이 변화되는 한마음교회 홍보지에 감동을 받고 입학 후 바로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마음교회 대학생 기숙사로 짐을 옮겼다.
교회에서는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에 대한 말씀이 선포되었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오픈하는 모습들에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며 나도 용기를 내어 아버지가 부끄러웠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리고 선포되는 말씀을 가슴에 받으며 목회자 자녀로 내 힘으로 열심히 쌓아온 신앙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었음이 깨달아졌다. 바로 엎드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님을 아는 자였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음을 알려주시고,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16장 9절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 된 죄!’임을 선명하게 비춰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서니 지금까지 아버지를 부끄러워 한 것도, 착하게 살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며 긍정적 생각으로 살았던 것도 모두 내가 주인이었음이 알아졌다. 그런 내게 예수님께서 “권세야, 내가 너를 사랑해서 죽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부활했다.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 하시며 지금의 내 모습과 상관없이 나를 기다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순간, 엎드려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참된 주인으로 모셨다.
상상할 수 없이 넘치도록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 주체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 펼쳐졌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부어지며 늘 어머니의 몫이었던 아버지의 비빔밥도 내가 비볐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옷을 입히고 벗겨드리며 수시로 “사랑합니다. 아버지!”라는 고백을 했다. 고린도후서 6장의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는 이미 다 가진 자’라는 말씀도 삶 속에서 실제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작은 마음을 베풀 수 있어 행복했고,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와 함께 복음을 전할 수 있어 더욱 감사했다.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친구들까지 똑같이 사랑한다는 사실이 알아지니 그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고등학교 친구를 춘천으로 초대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어.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부활하셨어. 우리와 인격적인 사랑을 위해서 말이야.” 흥분하며 복음을 전했더니 ‘얘가 왜 이러지?’하며 어리둥절하던 친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기쁜 만남이 시작되었다.
2019년 원주의 한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후 지금까지 10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나를 도구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는 학부모의 급한 연락을 받았다. 즉시 달려가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OO아! 선생님이 얘기했던 예수님 알지?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셔서 죽고 부활하셨는지 알지? 바로 널 사랑해서야.”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너, 그런 예수님을 지금 너의 주인으로 영접할래?” 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따라 영접기도를 했다. “OO아, 이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면 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염려하지 않아도 돼. 주님이 함께하시니까.” 얼굴이 환해진 아이와 편의점에 들렀다가 함께 교문을 들어섰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만나는 아이들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다. 언제까지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곳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고 섬기며 살아가고 싶다.
최권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