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은 가수이자 무용수… 오랜 훈련 거친 춤 보여줘”

입력 2022-07-30 04:07
오주연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무용과 교수가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오 교수는 최근 K팝 댄스에 대한 첫 이론서인 ‘K팝 댄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팬더밍하는 방법’을 출간했다. 권현구 기자

K팝 댄스를 다룬 책이 최근 미국 아마존 대중춤·커뮤니케이션 도서 분야 신간 1위에 올랐다. 오주연(38)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무용과 교수가 쓴 ‘K팝 댄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팬더밍하는 방법(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이 이달 출간과 동시에 미국 K팝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마침 서울대 국제하계스쿨 초청강연과 가족 방문을 위해 내한한 오 교수를 지난 22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 교수는 “내 책이 아마존 대중춤·커뮤니케이션 신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이게 실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면서 “7년 전 K팝 댄스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쓸 때만 하더라도 나 자신도 K팝을 서브컬처나 마이너리티 문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의 오 교수는 어린 시절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한 뒤 선화예중·고를 거쳐 현대무용으로 이화여대 학부와 석사를 졸업했다. 무용을 전공한 뒤 방송국 성우로 활동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순수 예술춤 못지않게 방송 댄스에 관심 있던 그는 2008년 TV 광고 속 춤을 분석한 석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이효리와 김태희가 휴대전화 광고에서 춤을 출 때였다. 일반 대중이 대체로 무용을 어려워하는데 TV에 나오는 춤에는 거리감을 덜 느끼며 좋아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가요나 광고에 나오는 춤, 즉 방송 댄스에 대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방송 댄스의 매력에 대한 궁금증이 결국 미국으로 유학 가서 K팝 댄스에 대한 박사 논문까지 쓰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오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시기는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미국에서 유명세를 누린 이후 소녀시대 등 K팝 그룹이 잇따라 미국에 진출하던 무렵이었다. 지금처럼 지구촌을 들썩일 정도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당시 한국인이 만든 공연 콘텐츠 가운데 가장 주목받던 K팝을 무용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박사 논문 주제로 채택했다.

오 교수는 “미국에 있으면서 영어로 쓰인 한국 춤 관련 책이나 논문이 없다는 게 늘 답답했다”고 한다. “단행본의 경우, 하와이대학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주디 반 자일 명예교수가 2001년 낸 ‘한국 무용 연구(Perspectives on Korean Dance)’ 가 사실상 유일하다. ‘한국 무용 연구’가 전통춤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내 논문은 1980년대 박남정 김완선 등을 필두로 한 방송 댄스, 1990년대 댄스 뮤직의 성지인 이태원의 문나이트 클럽, 그리고 2000년대 스트리트 댄스 등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면서 K팝 댄스로 진화하는 계보를 추적했다.”

그는 “일부에선 K팝 댄스가 진짜 한국 춤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세계 무용의 역사를 보면 외부의 춤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동안 서구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춤을 수용한 것에 대해서는 같은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을 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한국춤인 K팝 댄스는 이제 학문적 예술적으로 기록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팝은 그동안 음악적으로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 발라드와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섞인 혼종성을 설명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K팝 댄스 역시 혼종성을 보이는 가운데 K팝 가수를 무용수로도 보는 것이 오 교수 논문의 핵심 전제다. 그는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일찍이 K팝 아이돌에 대해 ‘싱잉 엔터테이너’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K팝 아이돌은 가수일 뿐만 아니라 오랜 훈련을 거친 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용수다. K팝 아이돌이 힙합 댄스, 라틴 댄스 등 수많은 장르의 춤을 직접 추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K팝 아이돌 육성에 한국식 영재 교육이 반영됐는데, 춤에서 그런 특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출간된 오 교수의 책은 K팝 댄스에 대한 첫 이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선 박사논문에서 한 발 나아가 SNS를 통해 진화한 K팝 댄스의 팬덤을 분석했다. 우선 K팝 댄스의 안무적 특징이 SNS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분석이다. K팝이 SNS에 영상으로 공개돼 확산되는 만큼 K팝 댄스는 임팩트를 주기 위해 표정을 강조하는 한편 상체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를 택한다. 이런 특징은 입체적이고 장식적인 상체 동작과 변덕스럽고 다채롭고 매력적인 표정을 강조하는 ‘소셜 미디어 댄스’와 일맥상통한다.

오 교수는 “라이브 공연에선 무대를 넓게 쓰면서 동작을 크게 해야 하지만 SNS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실제로 SNS 속 K팝 댄스에서는 바닥 동작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K팝 댄스의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요즘 아이돌들의 틱톡 댄스 챌린지”라고 말했다.

K팝 댄스의 확산에는 전 세계 팬들이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댄스를 배운 뒤 따라하는 커버댄스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원곡의 안무, 춤, 표정, 의상을 똑같이 모방하는 커버댄스를 추면서 팬들은 자신과 아이돌을 일체화한다.

오 교수는 “얼마 전 서울대 초청 강연 중간에 K팝 커버댄스 추는 시간을 줬더니 학생들이 무용 전공자가 아닌데도 정말 잘 췄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SNS를 통해 춤을 배우는 게 익숙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면서 “어떻게 보면 K팝 댄스는 춤 교육의 민주화 및 대중화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주연 교수의 책 ‘K팝 댄스’는 BTS와 ‘스트릿 우먼 파이터’까지 다룬다. 사진은 맨 위부터 BTS ‘블랙 스완’ 뮤직비디오 장면,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우승한 댄스팀 홀리뱅, 가수 효린과 홀리뱅 리더 허니제이의 댄스 챌린지. 엠넷·BTS 뮤직비디오·효린 틱톡

오 교수는 이번 책에 BTS는 물론 지난해 춤 열풍을 불러일으킨 ‘스트릿 우먼 파이터’까지 담았다. 오 교수는 “BTS의 경우, 스타디움 투어 등 라이브 공연에서는 무대를 크게 활용하면서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마치 현대무용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멤버 지민의 경우 실제로 현대무용을 전공해서인지 매우 잘 춘다”고 설명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K팝 댄스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출연 댄서들의 춤이 방송 댄스랑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K팝 아이돌들과 협업하기 때문”이라며 “최근 가수 효린이 신곡을 발매하면서 허니제이와 함께 댄스 챌린지를 한 것 등 사례들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또 “구조적으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K팝 댄스가 연결돼 있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 K팝 댄스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바람도 있다”면서 “미국의 무용 교과서를 보면 맨 마지막 챕터에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춤을 넣었는데, 우리 무용 교과서도 언젠가는 K팝 댄스를 추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