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국회의원 휴대전화 잔혹사

입력 2022-07-29 04:10

은밀히 진행된 2019년 탈북어민 강제 북송은 국회에서 촬영된 사진 한 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휴대전화 문자를 읽다가 언론 카메라에 찍혔는데, 사진을 확대해보니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보낸 거였다. ‘단결. ○○○ 중령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에 북송 상황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2020년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진에게 ‘카카오 들어오라 하세요’라고 문자를 보내던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의 휴대전화가 포착됐다. 국민의힘 대표 연설이 포털뉴스 메인에 편집되자 보낸 문자여서 여론 통제 의혹을 낳았다.

국회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많은 뉴스의 출처가 됐고, 그 주인을 난처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2013년 한 초선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불륜 관계로 보이는 여성과 문자를 주고받다 민망한 대화가 노출됐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누드 사진을 보다 렌즈에 잡혔고,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게임을 하다 2017, 2020년 두 번이나 찍혔다. 취업 청탁 문자를 들킨 의원은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런 일을 막으려 휴대전화에 붙이는 보안필름이 유행하기도 했다.

본회의장을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망원렌즈를 사용한다. 취재구역인 방청석 앞줄에서 단상의 얼굴을 섬세히 잡을 때는 500㎜ 이상, 의석을 스케치할 때는 200~400㎜ 렌즈를 쓴다. 방청석은 의석보다 한 층 높아 내려다보며 촬영하기에 의원들이 휴대전화를 들 때 포착하기 좋다. 특히 의석 뒷줄이 앵글에 잘 들어오는데, 주로 중진의원들이 거기 앉아 있다. 박지원이나 김무성처럼 그런 자리에 오래 앉아본 이들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화면을 일부러 노출시켜 거꾸로 이용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그 뒷줄에 앉았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400㎜ 렌즈에 선명하게 잡혔다. 일부러 흘렸을 내용은 아니니 들킨 것이다. 4선이나 한 분이 대형 사고를 쳤다. 원내대표는 처음이라 그런가…. 정권 여기저기에 아마추어 냄새가 너무 짙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