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는 반대한다

입력 2022-07-29 04:07

내가 사는 동네는 저층 건물이 밀집된 곳이다. 작업실이 있는 인근 동네도 비슷하다. 저층 주거지에는 오래된 건물부터 새로 지은 건물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모여 동네 경관을 만든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건물 간판이나 역사를 살린 카페, 디저트 가게, 식당, 작은 주점, 소품 가게가 많고, 그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동네를 찾는 관광객들이 평일에도 방문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는 레트로 감성적 취향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거주민인 나에게는 이 동네 풍경이 때로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 단지나 빌딩이 밀집돼 있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작년부터 이상한 현수막이 붙었다. ‘노후 건물’ ‘정비 사업’ ‘재개발 추진 사업’ 등의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나부꼈다. ‘마지막 기회’ ‘사무소 개소’ ‘동의서 접수’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현수막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동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 구청과 거주민들이 동네에 꽃도 심고 낡은 길을 보수해서 안전한 길로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사업은 시행사를 선정해놓고도 무산됐다. 건물주나 집주인들이 골목이 좋아지면 재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윤 추구를 내세워 지역에 사는 세입자와 거주민들의 안전한 주거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작업실 골목에 붙은 현수막은 최근에 ‘동의 50% 달성’이라는 문구로 교체됐다. 집 앞 골목에도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축하 현수막을 걸었다. 저층 건물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지역과 동네의 장소성은 한 사람이 독점하거나 사유화할 수 없는 공공의 가치와 문화와 역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장소를 지우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거주민의 안전과 주거권을 위협하는 개발을, 나는 반대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