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배터리 분야에서 잇달아 조원 단위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그동안 경쟁사보다 신중하게 투자를 해오던 삼성SDI의 전략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1조7000억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배터리 2공장을 증설키로 결정했다. 이 공장에서는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원통형 배터리 ‘프라이맥스 21700(지름 21㎜×높이 70㎜)’를 생산할 예정이다. 원통형 배터리는 기존 전동공구, 마이크로 모빌리티에서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용도를 넓히고 있다. 올해 101억7000만셀에서 2027년 151억1000만셀로 연 평균 8%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삼성SDI는 지난 5월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고,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공장을 짓기로 했다. 투자 금액은 25억 달러(약 3조72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올해에만 이미 5조원 이상의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려던 자체 배터리 공장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한 상황에서 삼성SDI의 ‘예정대로 투자’는 눈길을 끈다. 그동안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같은 다른 배터리 회사보다 투자에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재계 관계자는 “갤럭시 노트7 사태 이후 삼성 최고위층이 배터리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배터리 사업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공격적 투자를 망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급변하고, 지금이 배터리에 투자할 ‘골든 타임’이라는 공감대가 삼성 내부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기류 변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럽 출장길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헝가리 배터리 공장에도 갔고, 고객사인 BMW도 만났다. 자동차 업계의 급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었다. 이 부회장이 자동차 전장사업과 배터리를 직접 언급한 만큼, 이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SDI도 한층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의 출장에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동행했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