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005년 7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시 건설 750주년 기념식을 마친 뒤 러시아, 독일 정상과 담소를 나눴다. 시라크 대통령은 마이크가 꺼졌다고 여기고 영국에 대해 “저렇게 요리를 못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다. 영국이 유럽 농업을 위해 한 일은 광우병뿐”이라고 뒷담화를 했다.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11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 기자회견 후 별실로 이동했다. 이 자리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그는 거짓말쟁이여서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난 그런 그를 매일 상대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대화는 두 정상이 착용한 마이크가 켜져 있는 바람에 기자들에게 노출됐다.
대통령 뒷담화를 논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빼놓을 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을 “약해빠진 녀석”,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정신적으로 지체됐다”라고 뒤에서 욕했다. 지인과의 통화에선 코로나19로 사사건건 부딪쳤던 앤서니 파우치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에 대해 “그는 재앙”이라고 흉을 봤다. 정작 자신도 뒷담화 대상으로 빈번히 거론됐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자 동료에게 “대통령이 5~6학년 정도의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존 켈리 비서실장은 주위에 “트럼프는 바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며 이준석 대표에 대해 뒷담화하는 문자를 보내다 들통났다. 이 대표가 윤리위에서 당원권이 정지됐을 때 “안타깝다”던 대통령의 본심이 드러난 셈이다.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한가하게 이런 문자나 보낼 상황인가. 복합위기로 민생고는 커져 가고 ‘사적 채용’ ‘경찰국 설치’ 논란으로 민심은 싸늘하다. 정말 “뭣이 중헌디”를 모르는 대통령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