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함없는 삶의 경구 ‘실사구시’

입력 2022-07-28 04:02

널리 알려진 대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좌우명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민선 8기 서대문구청장으로 구민들의 선택을 받아 취임한 이후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곤 한다. 주로 구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때로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사실 ‘이거다’ 하고 누구에게 내세워 온 좌우명은 없지만 청소년기에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 체득한 신념이자 구정 일선에 몸담고 있는 지금까지 나의 철학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구가 있다.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다.

1983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 나는 명분과 이론도 중요하지만 총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명실상부한 학생자치회가 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 대학 최초로 ‘학생 소비조합’을 만들어 운영했다. 학교 내 식당, 매점, 서점 등을 민간이 아닌 학생회가 자체적으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고 이윤은 가난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학생회를 실사구시의 기조로 운영한 데 따른 성과였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이뤄내는 것이다. 국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YS의 말도 실사구시 정치를 강조한 것이다. 허공에 구호만 외치는 정치가 아니라 땅에 발을 디디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정치인은 지역주민이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책무가 있고, 국회의원은 이념 지향적인 일보다 국민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취임을 하며 ‘민생을 위한 가장 실용적인 구정을 펼치겠다’고 천명한 것도, 민선 8기 첫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으로 선출된 후 ‘구청장들의 소속 정당을 넘어 주민 행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최근 가졌던 구청 부서별 업무보고회도 차별화했다. 원탁으로 배치된 회의장에는 부서 최일선 실무 직원들까지 함께했으며 별도의 보고자료를 만들지 않도록 했다. 앞으로도 형식과 절차보다는 내용과 효율성에 주안점을 두고 직원들과 소통해 나갈 계획이다. 구청장 선거를 앞두고는 주거환경 개선과 서울 서북부권 랜드마크, 신대학로 조성 등 ‘5플러스 정책’과 경제·복지·교통 등 구정 각 분야의 혁신을 위한 ‘8대 찐 프로젝트’ 공약을 세우면서 혹여 현란하지만 공허한 레토릭(수사)은 없는지 거듭 점검했다.

이제 실사구시의 서대문구 민선 8기가 시작됐다. 앞으로 4년간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사구시와 함께 초지일관의 덕목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 둘을 날개 삼아 힘차게 비상한다면 반드시 지역 활성화의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