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 먹이려 ‘물장수’ 역할도 해요”

입력 2022-07-27 03:04
김창훈 예수마을 선교사가 캄보디아 시엠립 쿤리엄 마을 주민들을 심방하며 기도하고 있다. 김창훈 선교사 제공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가 500년 넘게 정글에 버려져 있던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발견하면서 캄보디아 시엠립은 앙코르와트의 도시가 됐다. 하지만 24년째 ‘캄보디아 복음화’를 가슴에 품고 사역지를 발굴해 온 한 선교사에게 이 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함께 비전을 펼칠 꿈의 도시로 그려지고 있었다.

시엠립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50㎞ 떨어진 쿤리엄. 이곳은 182가구 95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김창훈(58) 예수마을 선교사는 이곳에서 8년 차 농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최근 김 선교사를 현지에서 만났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하수를 먹을 수 없어요. 비소나 중금속 함유량이 높아 생수를 사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지요. 식수 문제부터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지하수를 퍼 올리고 정화 장치를 마련했다가 이렇게 ‘물장수’ 역할을 맡게 됐네요. 하하.”

정수 작업실 입구엔 ‘JLW’라는 현판이 달려 있었다. ‘지저스 리빙 워터(Jesus Living Water)’ 즉 ‘생명의 우물’로 첫 사역을 시작했기에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물의 이름을 JLW로 지었다. 예수마을 울타리는 36만㎡(약 12만평)에 달한다. 199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을 받아 프놈펜에서 제자훈련 사역을 펼치던 그는 지난 2015년 이곳에 둥지를 트고 정수 작업실, 농기계 창고,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예배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손수 지었다. 현지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마을을 만들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김 선교사가 주민들에게 식수 배달을 마친 뒤 물통이 가득 실린 경운기를 주차하는 모습. 김창훈 선교사 제공

당시 김 선교사의 눈에 띈 건 주민들의 생활양식이었다. 시엠립 인근 주민의 경우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 시장에서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쿤리엄 마을의 경우 재정 자립도가 현저하게 낮았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주민들에게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말은 효용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삶의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하면서 경제 영역을 선교 영역으로 전환해가는 아이디어도 찾게 됐어요.”

김 선교사는 지역 특성과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연구한 끝에 ‘더불어 농장(Living together farm)’ 사역을 시작했다. 가난한 농가에 암소를 분양해주고 새끼를 낳으면 젖뗀 새끼를 또 다른 가정에 분양하는 ‘암소 은행’,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양계장, 묘목장 사역을 차례로 펼쳤다. 2년 전부터는 마을 내 25가구와 같이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지금은 예수마을에서 현지인 네 가정과 함께 캐슈넛 나무 1500그루, 대추야자 나무 600그루, 소 21마리 등을 키우며 주민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예수마을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 제2, 제3의 예수마을이 생기고, 의료선교 마을, 은퇴 선교사 마을로도 확장해가도록 할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주신 ‘길 만드는 사람(way maker)’으로서의 소명입니다.”

시엠립(캄보디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