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 협곡 속 굽이굽이 점입가경, 폭염도 못 찾는다

입력 2022-07-27 20:43 수정 2022-07-27 21:14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 제2용소 상공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다본 모습.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계곡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아래 가운데 동그란 물웅덩이가 제2용소다.

응봉산(鷹峯山)은 전국 각지에 여럿 있다. 이 중에서 ‘여름 응봉산’하면 흔히 떠올리는 게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 경계에 있는 응봉산(999m)이다. 대한민국 대표 오지 계곡 명산으로 꼽히는 이곳은 트레킹으로 이름난 삼척의 용소골 덕풍계곡, 울진의 온정골 덕구계곡 등 멋진 계곡들을 거느리고 있다. 재량밭골, 문지골 등 아직 덜 알려졌지만 빼어난 골짜기도 많다.

응봉산 대표 골짜기인 용소골은 덕풍계곡의 상류다. 정상에서 북서 방향으로 흐른다. 해발 1000m도 되지 않는 산이 이렇게 웅장한 계곡을 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용소골은 길고 깊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굽이져 흐르는 계곡은 감탄을 자아낸다.

용소골에는 3개의 용소가 있다. 문지골 갈림길에서 1.2㎞ 지점의 제1용소, 다시 1.3㎞ 지점의 제2용소는 트레킹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덕풍마을에서 2용소까지는 길이 잘 정비돼 초보자도 수월하게 탐방할 수 있다. 2용소에서 3용소까지는 5.6㎞다. 이 구간을 포함해 응봉산 정상까지 구간은 생태유전자보호구역이어서 출입통제다. 2용소 구간만으로도 덕풍계곡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덕풍계곡 물길을 시원하게 걷는 탐방객.

덕풍계곡의 행정구역은 가곡면 풍곡리다. 덕풍교를 건너 대규모 주차장에서 계곡으로 들어서면 좁은 진입로가 이어진다. 5.5㎞를 가면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의 출발점인 작은 마을이 나온다. 6·25전쟁 당시 군인들도 마을이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오지 중 오지’였다. 300여m 걸어가면 용소골과 문지골이 만나는 합수 지점이다. 직진하면 용소골이고, 오른쪽으로 물을 건너면 문지골이다.

갈림길에서 조금 더 가면 헬멧이 비치돼 있다. 낙석에 대비해 착용하는 것이 좋다. ‘오래 머무르지 말라’는 팻말 앞에서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쳐다보면 큰 바위가 떨어진 흔적을 볼 수 있다.

물길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암벽이 수직에 가까운 협곡을 이루고 있다. 험난한 구간에는 대부분 철제계단이나 난간이 설치돼 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한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탄성을 지르는 풍경이 펼쳐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용소골 계곡물은 진한 갈색을 띤다. 물속에 잠긴 낙엽에서 우러난 탄닌 성분 때문이다. 그래서 수심이 실제보다 훨씬 더 깊어 보인다. 약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물빛은 다소 칙칙해 보일지라도 물은 1급수에서 사는 버들치가 헤엄치는 청정수다.

제2용소 오른쪽 계단에서 탐방이 끝난다.

가장 먼저 만나는 큰 폭포는 제1용소다. 검은 벽이 소(沼)를 둘러싸고 있어 은밀하고 압도적이다. 수심이 40m를 넘는다고 한다. 폭포 옆으로 이어진 철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뱀처럼 구불구불한 계곡이 이어진다. 2용소는 더 웅장하다. 높이 8m에서 떨어지는 물살이 포효한다. 아래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소가 용트림하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더위를 피해 숨어들기 딱 좋은 피신처다.

덕풍계곡보다 더 오지 계곡은 응봉산 북쪽인 원덕읍 사곡리 재량밭골이다. 재랑밭골 또는 제당밭골로도 불린다. 골짜기 안에 넓은 밭 터가 있어서 재량밭골이라 했다고 한다. 용소골에 비해 깊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소박한 청정계곡이다. 응봉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제1폭포까지만 트레킹하는 것이 좋다. 편도 2.5㎞ 구간이 완만한 데다 임도를 따라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사곡리 마을회관을 지나 상촌마을 버스 종점까지 간 뒤 왼쪽 민가 사이 비좁을 길을 따라가면 차단기로 가로막혀 있는 임도 들머리가 나온다. 간이 화장실도, 등산 안내판도, 표지목도, 공식 주차장도 전혀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트레킹 코스다.

차단기를 지나면 숲 안으로 임도가 길게 이어진다. 500m 정도 걸으면 임도는 계곡 옆으로 붙는다. 폭포까지 1급수가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다. 개울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4번 건넌다. 2㎞ 정도 걸어가 3번째 징검다리를 건너면 마지막 민가가 나타난다. 50여년 전 만해도 이곳에는 여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사곡리 재량밭골 임도 끝에서 만나는 제1폭포.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폭포가 반긴다. 큰 폭포는 아니지만 바위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모양새가 운치를 더한다. 이곳부터 임도는 끝나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폭포 바로 위에는 제법 큰 소가 자리하고 있다. 200m쯤 더 가면 길은 산으로 올라선다. 지난 봄 삼척 울진 지역에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할퀴고 간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행메모
덕풍계곡 들머리 닭백숙 사전 주문
재량밭골 사곡리~폭포 1시간 20분

수도권에서 자가용으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빠져 영월, 태백을 지나 풍곡으로 가는 것이 편하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태백에서 호산·풍곡리행 버스를 타고 덕풍계곡 입구에서 하차한다.

덕풍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응봉산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은 승용차가 겨우 지나갈 만큼 길이 좁다. 대형 차량은 통행 불가다. 차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등산로 입구에 최근 주차장이 마련됐지만 주차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간이 넉넉하고 걷기에 자신 있다면 맑고 푸른 하천을 끼고 걸어도 좋다. 1시간가량 걸린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12인승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편하다.

덕풍계곡 들머리 주변에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토종 닭백숙과 닭볶음탕, 도토리묵, 감자전 등을 내놓는 산장도 있다. 닭 요리는 탐방 전에 미리 주문하면 하산하자마자 먹을 수 있다.

재량밭골 차단기 앞 좁은 공터에 1~2대 주차할 수 있다. 사곡리 버스종점에서 폭포까지는 1시간 20분쯤 걸린다.





삼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