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재미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래 퀴즈 같아요. 몸무게 22t 암컷 향고래가 500㎏에 달하는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t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암컷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으니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해요.”
임금 30% 인상 요구를 철회하고 사측에서 제시한 4.5% 인상에 합의하며, 그 대가로 8000억원의 손해배상을 떠안게 될 하청노동자들을 생각하다가, 요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립니다. 드라마 속 대사를 살짝 각색해볼까요?
이 사건은 재미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계 조선업 1위 한국의 대형 조선 3사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51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은 회사의 경제적 손실이 8000억원 넘게 발생하여, 이를 파업 노동자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루 매출 손실 260억원, 고정비 손실도 60여억원씩 발생했으며, 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주장처럼 파업으로 하루에 320억원씩 손해를 본 것이 사실일까요? 대우 옥포조선소 5개 도크 중 1개 도크만 멈춰서고 나머지는 정상 가동했는데요?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손해의 책임이 전적으로 파업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맞는 걸까요? 기업이 말하는 손실액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합니다.
한창 파업 중이던 7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상반기에 전 세계 발주량의 45.5%를 수주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2018년도 이후 4년 만에 상반기 수주 실적 세계 1위를 탈환했습니다. 국내 조선사의 6월 말 현재 수주 잔량은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도 28% 증가했습니다. 특히 대형 조선 3사는 이미 3~4년 후까지 도크 예약이 채워질 정도라고 합니다. 사측과 일부 언론은 이러한 시점에 생산 중단으로 인해 단 한 척이라도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선주와의 신뢰가 깨지고,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초호황기를 맞은 조선업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어느 정도여야 마땅한 걸까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재 그들이 받는 시급은 1만원 안팎입니다. 22년 차 숙련공이 받는 월급도 207만원 남짓입니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업에서 20년 베테랑 노동자가 하청이라는 이유로, 요즘 청년층 첫 직장 임금만도 못한 2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이들의 임금이 2016년 조선업 위기 시 대폭 삭감되어 아직 원상복구 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임금 30% 인상은 그저 6년 전 임금 수준으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파업은 끝나고, 그들은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파업이 끝난 후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주 목표 달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인터뷰를 했더군요. 51일간 일손을 놓았던 하청노동자들은 여름휴가도 없이 일에 매진하며 이 더위를 견뎌야 할 것입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일반 변호사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8000억원 손해의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면, 그건 ‘고작 4.5% 임금을 더 받으려고’ 파업을 한 노동자들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조선업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6년 전 임금도 주지 못하겠다며 8000억원 손해를 감수한 회사 측일까요?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부익부이고 빈익빈인 사회, 우리가 언제까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