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그렇잖아요? 그냥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맞을 수 있다. 영화 ‘비상선언’은 2만8000피트 상공에 떠 있는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다룬 국내 첫 항공재난물이다.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재난이 시작된다. 여행의 기대감과 설렘에 가득찼던 승객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혼란과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승객 중에는 비행공포증이 있으나 딸의 치료를 위해 탑승한 재혁(이병헌)도 있었다.
부기장 현수(김남길)를 비롯해 사무장 희진(김소진) 등 승무원들은 150명의 승객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지상에서도 형사팀장 인호(송강호)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장 태수(박해준) 등이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인호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 제보를 받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용의자가 항공기에 타고 있음을 파악한다. 승객 중엔 그의 아내도 있다.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테러가 발생한 비행기의 착륙은 어려운 미션이다. 지상에 있는 국민의 안전 보장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시간이 갈수록 기내의 사망자는 늘고, 승객들의 무력감은 커져 간다. 기장까지 사망하게 되자 비행기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놓인다.
영화는 1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 있게 진행된다. 스토리는 물론 화면 구성도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360도 회전하며 패닉에 놓인 기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파극이 될까 우려도 있었으나 사건 자체에 집중하면서 박진감 있게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재난 안에 노출된 승객들, 이를 바라보는 지상의 시민들을 통해 관객은 재난 상황에 맞닥뜨린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승객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화는 어떤 행동이 옳다 그르다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다양한 재난을 연상케 한다.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재난이나 총기 난사 등 실제 사건에도 대입될 만한 이야기다. 메가폰을 잡은 한재림 감독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어떤 특정한 재난이 아니라 재난 자체의 속성을 더 들여다보면 더 많은 함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난 이후의 상황과 우리는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어 “결국 이 비행기는 착륙할 거냐 말 거냐로 귀결되지만 어떤 사람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어떤 의미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난이란 게 무엇이고, 재난이 우리에게 갖게 하는 생각들에 더 집중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한 감독은 ‘관상’ ‘더 킹’ 등을 연출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 정식 초청됐다. 제목인 ‘비상선언’은 항공기가 더 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항공 용어다. 8월 3일 개봉.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