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설비 등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인 접근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1998년 4월 시행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장애인등편의법)은 사회적 약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시설주에게 경사로,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을 시행한 지 24년이 흘렀지만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시설물들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공공기관들 중에도 그런 곳이 적지 않다.
장애인 단체가 최근 편의시설 설치 필요성을 엉뚱한 방식으로 제기했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여 고발된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25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 자진 출석하고도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조사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지난 14일과 19일 서울 혜화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되풀이된 것이다. 전장연 측은 “서울경찰청장은 24년 동안 서울청 산하 경찰서가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이에 대해 전수조사한 뒤 계획을 발표해달라. 모두 이행되면 저희도 조사받겠다”고 했다. 출석 요구한 6개 경찰서 가운데 4곳(중부·종로·혜화·용산서)에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위법 사항이 없다고 반박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나 적절한 답변도 아닌 것 같다. 해당 경찰서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 이전 준공돼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법 조항에 비춰볼 때 책무를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전장연 측은 조속히 경찰 조사에 응해야겠고, 경찰과 재정 당국도 편의시설 확충,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에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