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회의를 주도한 일선 서장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지면서 경찰 내부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정부가 다음달 2일 경찰 제도개선안 시행을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총경급 이외의 간부들도 경찰국 반대 전선에 가세한다면 사상 초유의 ‘경란(警亂)’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찰서장회의를 주도했다가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류삼영 총경은 2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직접 보여준 결과”라며 “(경찰청 밖의) 외력이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식의 인사 보복은 결국 일선 경찰들의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류 총경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서장회의 전날인 지난 22일만 해도 “서장회의를 마치고 25일에 만나서 얘기를 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윤 후보자가 전국의 총경들에게 서한을 보내 ‘숙고해 달라’며 회의 개최를 만류하긴 했지만, 회의에서 나온 총경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겠다는 자세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 회의가 개최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23일 오후 4시쯤 류 총경은 경찰인재개발원 측으로부터 ‘회의를 해산하라’는 통보를 들었다. 경찰청은 오후 5시35분쯤 “참석자에 대해 엄중하게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회의 종료 직후에는 류 총경에 대한 대기발령과 함께 참석자 50여명에 대한 감찰 착수 발표가 나왔다. 해산 통보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강행해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감찰의 근거다.
일선 경찰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경찰 내부망에는 윤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작성자는 류 총경 대기발령을 언급하며 “국민과 조직원들을 외면한 채 장관과 대통령만 바라보는 청장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내부 반발이 계속되더라도 경찰국 신설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서장회의를 “부적절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경찰 통제 강화에 대한 대통령실의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강행 처리는 예정된 수순이지만 후폭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류 총경이 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징계에 관한 행정소송을 하려면 회의 해산 지시에 대해 적법한 직무 명령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법 개정 없이 경찰국을 설치하는 게 적법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라며 “위법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은 류 총경을 위한 법률지원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도 시작했다.
총경급 이상 간부들 역시 현 상황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집단적 의견표명 가능성은 작지만, 현장 분위기를 청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흘러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윤 후보자의 리더십은 취임도 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징계로 인한 기강 확립보다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결국 ‘경란’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판 양한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