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헌재·대법 갈등에 ‘당사자’는 없다

입력 2022-07-25 04:05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역대 두 번째로 ‘대법원 재판 취소 결정’을 내렸다. 법 조항의 해석을 문제 삼는 한정위헌 결정을 법원이 따르지 않자 헌재는 “그런 재판은 헌재가 다시 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를 날렸다. 사태를 바라보는 법조계 시각은 갈렸다. 어떤 부장판사는 “한정위헌은 본질적으로 법원의 재판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한 헌법학자는 “헌법에 비춰 판단을 내리는 헌재 결정을 법원이 무시해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옳고 그름에 다른 평가가 내려졌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대법원과 헌재 중 어느 기관도 먼저 양보할 수 없을 거란 얘기였다. 며칠 뒤 대법원은 “외부 기관이 법원 재판의 당부를 재심사 할 수 없다”고 헌재를 겨냥한 입장을 내놨고, 헌재는 두 번째 재판 취소 결정 이후 3주 만에 또다시 대법원 재판을 취소했다. 오랜 기간 법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입법을 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짚었다.

입법에 모든 걸 맡긴 두 기관의 갈등 속에서 소외되는 건 재판의 ‘당사자’다. 지난달과 지난 21일 헌재에서 대법원의 재심 기각 판결 취소 결정을 받아든 이들은 2014년과 2013년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었다. 10년 가까이 지나 원하던 답을 받았지만 매듭지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당사자는 다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순 있고, 이번에는 받아들여지길 바랄 것이다. 그때까지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취임사에서 “헌법재판권을 국민을 위해 올곧게 행사하겠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취임 일성에도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올곧게 행사된 헌법재판권과 좋은 재판의 실현이 당사자를 비껴갈 순 없을 것이다. 두 기관의 갈등이 과연 이들의 다짐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임주언 사회부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