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서울·수도권 대학의 입학 정원을 늘리기로 하면서 대입 현장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쏠린다. 교육부는 반도체 이외 다른 첨단분야의 증원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반도체발(發) 정원 확대 ‘도미노’로 수도권 대학의 입학 정원이 지금보다 8000명 이상 많아지면 대입 판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교육부는 최근 일반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2000명가량 늘린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르면 현재 고2가 치르는 2024학년도 대입부터 단계적으로 증원될 것으로 보인다. 2000명 중 수도권 대학 배정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정부 수요 조사에서 수도권 대학 14곳이 1266명, 지방대 13곳이 611명 늘릴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따라서 실제 규모는 지방대 반발 등을 고려해 1000~1300명 수준에서 조정될 전망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대기업 입사를 노릴 수 있는 대학 한 곳이 개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우 반도체 학과는 최상위권에서 커트라인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다. 종로학원이 분석한 ‘2022학년도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시모집 결과’를 보면 고려대의 경우 반도체공학과의 국어·수학·탐구 백분위 평균이 의과대학(97.97) 바로 아래인 96.47(상위 70% 합격자 기준)이었다. 성균관대의 경우 의예(99.0), 약학대학(96.83)에 이은 3위(95.83)이었다.
지방대 사정은 다르다. 지방대 의·약학 계열이 학생 충원 걱정을 않는 이유는 전공 분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고, 국가가 자격증 취득 인원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전공은 공인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어서 수험생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인(in) 서울’ ‘거점 국립대’ 같은 대학 평판에 신경을 쓰게 된다. 지방대의 반도체 전공 입학 정원이 늘더라도 우수 학생은 서울로 쏠릴 수밖에 없으며, 지방대의 기존 반도체 학과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수도권 대학의 입학 정원 1000~1300명 증가는 파급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다른 첨단분야의 수도권 입학 정원 확대도 고려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24일 “반도체 학과를 포함해 수도권에서 8000명의 정원 여분이 있다. 다른 첨단분야도 필요하면 증원할 수 있다”며 “8000명으로 충분할 것으로 보이지만 부족하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 개정 없이 그 이상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입학 정원 8000명 확대는 대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규모다. 매년 선발되는 의대와 치의대, 한의대, 수의대, 약학대학을 모두 합쳐도 6599명(정원 내 기준) 수준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이과 수험생이 문과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과도 맞물려 지방대뿐 아니라 인문·사회 계열 및 기초과학 분야에서 신입생 충원이 한층 빡빡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