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찍은 거장 로베르시에서 중국 신예 키키수까지

입력 2022-07-25 04:06
패션 사진의 명작으로 꼽히는 피터 린드버그의 1988년 작 ‘해변의 여인들’. 이엔에이파트너스 제공

전설적인 독일 출신 패션 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1944∼2019). ‘보그’ 등 유명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던 슈퍼 모델을 흑백 필름에 담던 린드버그의 사진 세계는 스펙트럼이 넓다. 모델들을 화장기 없이 맨얼굴로 찍기도 했지만, 불시착한 외계인과 미녀의 만남으로 연출해 영화 장면처럼 찍는 등 표현 방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1988년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에서 흰 셔츠 차림의 슈퍼 모델 6명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을 찍은 흑백 사진은 패션계의 거짓 욕망을 걷어낸 순간을 포착한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린드버그가 찍은 이 해변 사진을 비롯해 패션 사진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총출동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에 위치한 전시 공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하는 ‘매직샷’전이 그것이다. 기획사 이엔에이파트너스와 뉴욕의 사진 전문 전시 재단(FEP)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톱스타 송혜교 김희선과 함께 작업한 바 있는 파올로 로베르시(75),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적 있는 닉 나이트(64) 등 유명 사진작가들뿐 아니라 에릭 매디간 핵 등 인스타를 통해 떠오르고 있는 신예까지 세계적인 패션 사진작가 48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잡지 화보라는 정형화된 틀을 넘어서 사진작가로서의 독창성과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다양한 패션 사진을 맛볼 수 있다. 닉 나이트의 작품에는 패션을 넘어선 판타지가 있다. 에릭 매디간 핵이 오페라 나비부인의 뒤태처럼 찍은 사진에서는 파랑 배경과 노랑 의상의 탁월한 색 배합에 감탄하게 된다. 솔브 선즈보는 고대 그리스 조각 ‘라오콘 군상’ 같은 격정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위르겐 텔러는 패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의 이니셜 ‘M’이 연상되도록 모델의 다리 모양과 로고의 일부를 연결시키는 재치를 부렸다. 중국의 차세대 주자 키키수는 소수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션 사진으로 서구 중심의 패션 미학에 도전한다.

서구 중심의 패션 미학에 도전하는 중국 사진 작가 키키수의 '풍선껌'. 이엔에이파트너스 제공

패션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도 있다. 전시장 들머리에 전시된 메이지 커즌즈의 ‘손가락’ 연작은 김치를 버무린 듯 붉은 액체가 번질거리는 모란 꽃잎을 만지는 손가락, 반죽을 만지듯 엉덩이를 움켜쥔 손가락 등에서 에로틱한 정서를 풍긴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마일즈 알드리지의 작품은 싹둑 잘린 여성의 다리 아래로 미니어처 자동차를 배치해 초현실적 풍광을 만들어낸다. 옷 잘 입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캐스팅해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일약 패션 사진작가가 된 스콧 슈만의 보통 사람 연작도 눈길을 끈다. 장인아 문한나 등 한국 사진작가도 포함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엔에이파트너스 양진영 대표는 “과거에는 패션 사진을 잡지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사진의 생산과 소비, 유통에 파격적인 변화가 생겨나면서 패션 사진은 상업적인 영역을 넘어 새로운 예술 장르로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 25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