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누가 리플이란 말을 써요?” “PD님 몇 년차예요?” “더 준비하신 게임 없어요?” “영석이 형 울겠다, 그만해!”
tvN ‘뿅뿅 지구오락실’에서 출연자들은 ‘예능 거장’ 나영석 PD에게 시시때때로 핀잔을 준다. 비협조적인 건 절대 아니다. 출연자들은 어려운 과제일수록 흥미를 보이고,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로그램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당황하는 나 PD를 조롱까지 한다. 제작진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가고, 그 지점이 시청자들을 소위 ‘터지게’ 한다.
재밌어서 화제가 되는 건 사실이다. 달나라에서 옥황상제의 노동 착취를 피해 지구로 도망친 옥토끼를 잡으러 다니는 네 명의 지구 용사들은 ‘미친 텐션’을 뽐낸다. 재기발랄한 맏언니를 맡은 개그우먼 이은지, 개그우먼보다 더 웃긴 분위기 메이커 이영지, 솔직하고 쾌활한 미미에 승부욕에 불타는 막내 안유진까지 지구 용사들 각자의 캐릭터는 명확하다.
초록빛 촌스러운 옷장과 전기장판 컨트롤러로 구현한 타임머신도 웃음을 자아낸다. 2000년대 초반을 의미하는 Y2K 코드를 섞어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들에게 함께 웃을거리를 준다. 타임머신과 함께 등장하는 Y2K 콘셉트는 클리셰로 뒤덮여 있지만 이 예능에서 과거의 공식은 하나도 들어맞질 않는다. 과거 나 PD가 만든 예능 ‘신서유기’의 여자 버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하기엔 웃음 코드가 다른 데 있다. 비슷비슷한 예능에 지친 대중을 겨냥한 나 PD의 영리한 수가 통했다.
제작진은 마사지를 받는 용사들을 두고 도망가면서 1시간 내에 식사 장소로 찾아오라는 ‘낙오’ 미션을 주지만 이들에겐 스마트폰의 안내를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여행지에서 늘 하는 일이다. 과거엔 출연자들이 우선 당황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길을 찾아 헤매면서 진땀을 뺐겠지만 말이다. 게임에서 이기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는데 출연자들은 잠시 후 “배부르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며 승부에 시큰둥하다. 게임 진행이 어설프면 제작진에게 “땡”을 외친다.
매회 한 방씩 얻어맞는 나 PD의 모습은 지구 용사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재미를 준다. 제작진의 당황한 모습에선 ‘꼰대’ 또는 ‘라떼’로 불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어디서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요즘 애들이랑 일하기 힘들어’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상황이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목격되는 나 PD의 동공지진은 웃음 포인트가 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영석이 형’처럼 사고의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 함께 다음 스텝으로 가자”고 유쾌하게 말하는 사람도, 자신만의 권위를 굳이 찾아 내세우며 근엄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별이나 세대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세상엔 ‘무늬만 어른’도 많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사려 깊고 유연한 사람들이 많다. 구분도 의미도 모호한 ‘MZ세대’라는 단어에 특정 연령층을 가두는 데도 오래전부터 동의하지 않아 왔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아우르는데,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하나의 단어로 묶는다는 건 여러모로 이상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예상을 뒤엎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는 재미가 작지 않다.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웃고만 있기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경험이라는 틀에 갇혀 어리석은 속단을 하지는 않았나 갑자기 진지해진다. 길고 긴 인생에서 경험치는 중요하지만, 경험이 많다는 건 유연하고 겸손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도 시간 낭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 경험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