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버스 안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이나 짐을 받아주는 배려가 있었다. 짐을 받아주면 서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지금은 아무도 짐이나 가방을 받아주지 않는다. 받아주고 싶어도, 서 있는 사람이 나의 호의를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들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공중목욕탕에서도 옛날엔 으레 서로 등을 밀어줬다. 그러나 지금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서로 등 밀어주기를 제안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이렇게 사람들이 점점 개인화, 고립화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를 떠나 혼자서 살 수 없다. 혼자 살게 되면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공동체 생활과 멀어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아파트에 살면서 앞집, 옆집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산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공동체 생활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 생활과 멀어지는 극단적인 경우가 ‘은둔형 외톨이’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극도로 멀리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된다. 문자 그대로 방안에서 ‘은둔’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는 요인은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개인주의적 경향 때문일 터인데 이런 개인주의적 경향을 불러일으킨 요인은 다양하다. 먼저 가족 해체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어가는 현상이 사람들을 자기 개인 속에 갇히게 만든다. 여기에 학창 시절 왕따 경험, 지나친 경쟁의식, 부모의 과도한 기대감 등이 ‘은둔’을 부채질한다.
이들이 외부와 교류하는 유일한 수단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이들의 ‘나 홀로 놀기’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디지털 문화의 총아인 인터넷은 원래 개인을 고립화시키는 속성을 지닌다. 아마 인터넷이 없으면 은둔형 외톨이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나 직장에서 비대면 접촉이 늘면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이 심해진 게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설계된 인간이 이웃과 더불어 살지 않고 은밀한 공간에서 고립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병적인 현상이다. 이른바 ‘외로운 늑대’는 이런 병적 현상의 한 증후다. 지난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도 5월까지 교토에 있는 공장에서 지게차로 짐을 옮기는 일을 했는데, 직장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늘 혼자 차 안에서 밥을 먹었고 동료들과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의 한 형태인데 이 외톨이가 ‘외로운 늑대’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은둔형 외톨이는 언젠가 무서운 늑대로 돌변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은 여러 요인에 의해 우울, 고독, 분노, 불안 등의 정서적 고통에 시달리며 타인과의 소통을 멀리하고 외로움의 섬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보고 영국에서는 2018년 ‘고독부’를 신설,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21년에 ‘고독부 장관’을 임명했다고 하니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고독사하는 연령대는 대부분 노인인데 이들은 이혼, 질병, 빈곤 등의 이유로 가족이 있지만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고독사하는 사람이 2020년 1385명이었으며 이 숫자는 해마다 증가한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근 ‘인공지능 자동 안부 전화’ ‘다시 이음 사업’ 등 갖가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대증요법으로 고독사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고독사나 은둔형 외톨이는 현대사회가 낳은 기형적 현상인데 이를 해결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한 사회 즉 서로 돕고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