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간 성품을 결정짓는 ‘마음’, 말씀 앞에선 활짝 열리게 하자

입력 2022-07-26 18:40
성품학습으로 성장하는 캄보디아 우동 글로리 국제학교의 어린이 예배 모습.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무엇일까? 아마 신명기 6장5절 일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렇다면 신약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은 무엇일까?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묻는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제일 큽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이와 같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즉 성경 전체를 요약한 메시지다. 이러한 사랑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진짜 속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원리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다.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이 때문에 성품교육의 목적도 인간의 속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사랑이다. 마음이 원인이라면 사랑은 그 결과이며 마음이 뿌리라면 사랑은 그 열매이다. 이 사랑의 열매가 모든 도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고전13:4-7). 왜 하나님에게 불신, 패역, 저항과 같은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할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왜 이웃에게 시기, 분 냄, 비방, 살인과 같은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할까?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왜 내 자신에게 음란, 게으름, 탐욕과 같은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할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내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며, 내 가장 중요한 이웃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도덕적인 열매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성품도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의 마음이 무엇일까? 이것을 올바로 알아야 성품교육을 잘 할 수 있다.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인격이다. 그런데 인격이 어디에 있을까? 마음에 있다. 또 인격은 성경적인 용어로 인간의 영혼이다. 그러면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마음에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을까?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 인간 안에 오신 성령님은 어디에 계실까? 성령님도 인간의 마음에 계신다. 이와 같이 마음은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과 영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근거지다.

이 때문에 조직 신학자인 루이스 벌코프는 인간의 마음이 종교의 자리이며, 또한 영혼의 작업실이라고 한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곳, 인간의 영혼이 새롭게 되는 곳, 인간의 영혼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자리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너지면 인간도 무너진다. 신앙도 무너진다. 모든 것이 엉망이 돼 버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켜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이다(잠4:23). 이러한 마음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경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1,000번이 넘게 나온다. 엄청난 숫자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탄식을 들어보자. “오늘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6),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29:13)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돌이켜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시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계시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성품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마음에 집중한다. 인간의 자아도 마음에 있고, 인간의 고통과 슬픔, 인생에 대한 회한도 마음에 있고, 모든 것이 “마음,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처음 만난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할까? 왜 하나님을 믿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할까? 왜 더 이상은 하나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을까? 모든 원인은 마음에 있다. 교회 안에 이런 마음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며, 인생과 신앙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마음을 인간의 심리 영역으로 제쳐놓고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인간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황폐화되면 그 어떤 교육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마음은 인간을 지탱하는 땅이며 이 땅위에 발을 딛고 선다. 이러한 땅이 금이 가고, 심하게 함몰되어 있으며, 점점 메말라 가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인생과 신앙이라는 건물을 세우려면 전적으로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품교육은 마음이 우선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렇게 마음이 변할 때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을 위한 윤리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에는 첫째로 지정의(知情意)의 인격이 들어있다. 둘째로는 성령이 계신다(고후1:22). 마음을 간단하게 지·정·의의 인격으로 볼 수도 있다. 성경의 많은 구절이 인간의 마음을 지·정·의의 인격과 동일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의 마음, 지·정·의의 인격이 변할까?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많은 오류가 생긴다. 교회에서 예를 들어보자. 만약 교회에서 지식적인 성경공부에만 집중한다면, 인간의 지정의 중에서 ‘지’만 자극하는 것이다. 그 결과 말 그대로 지식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성경공부를 해도 사람이 안 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지·정·의 중에서 ‘지’만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 교회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한다고 내적치유에만 집중하면 인간의 지·정·의 중에서 ‘정’만 자극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픈 마음은 위로가 되지만 사람은 여전히 안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고집스러운 생각이나 신념을 고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교회에서 사람들을 말씀대로 살게 하려고 의지적인 행동만 강조했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인간의 지·정·의 중에서 ‘의’만 자극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행동만 강요하는 율법이 되고 인간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복음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참된 성품교육이 되려면 지·정·의 모두를 자극하는 총체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완악함 즉 닫힌 마음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러한 닫힌 마음을 가장 문제로 여긴다(막3:5). 이러한 닫힌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성품교육의 주목적인데 인간의 마음이 완악해지는 이유는 인간의 지·정·의가 총체적인 난맥상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정·의는 서로 얽혀있어서 좋거나 나쁜 쪽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이 왜 완악할까?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못 믿고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될까? 왜 인생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될까? 그 이유는 인간의 생각에 문제가 있고, 감정이 얽혀 있으며, 그동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긴 불신앙적인 가치 체계가 견고하게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항상 생각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아들이 대학입시에서 떨어졌다고 해보자. 오래 동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까지는 그저 감정이 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감정 처리만 잘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감정이 상한 것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역시 인생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돼. 우리 아이가 고3 이었을 때 주일날 교회가 아닌 학원에 보냈어야 했어’라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상한 감정이 단단히 스크럼을 짜서 불신앙적인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 신념은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번 닫힌 마음이 되면 열린 마음으로 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마11:17). 이런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마음이 닫히게 된 그 과정을 역순으로 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식이 대학입시에 떨어진 문제 감정 때문에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않는 문제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내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비성경적인 신념 때문이다. 이때는 이런 불신앙적인 생각을 ‘내가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하나님이 내 자식에게 주시는 아름다운 결말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내 자식이 가는 길이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이 결국은 아름답게 쓰실 텐데…’라는 식의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경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식 일에 대한 절망과 탄식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되었던 감정이 성경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즉 문제 감정, 문제 행동, 문제 생각으로 연결되었던 일이 성경적인 생각, 성경적인 행동, 성경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이 변하는 일에는 지·정·의가 함께 동원되고 작동된다. 인간의 행동 메커니즘이 이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사람들을 교육할 때도 인간의 지·정·의를 모두 자극하는 통합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이중에서도 성품교육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문제 생각을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주는 도덕적인 동기부여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되면 죄를 짓지 않는 도덕적인 행동이 가능하게 된다. 결국 초점은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다윗처럼 전쟁 중에도 태평하게 잠을 잘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교회 학교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마음 지킴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성품교육이다.

◇필자소개= 이해주 박사는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그룹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기독교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석사논문은 ‘청소년의 성품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로 박사논문은 ‘기독가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성품교육 전문가’이다.

이해주 목사
씨앗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