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수집하면서 당사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킨 사안이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남발에 경종을 울렸다.
헌재는 21일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등이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12월 31일까지 이를 보완할 입법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공수처의 민간인 사찰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도 병합해 심리했다. 현행법은 수사·정보기관이 재판 수사 등을 위해 영장 없이 이동통신사를 통해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대규모에 무차별적인 데다 사후 통지를 하지 않아 논란이 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 수사기관에 제공된 통신자료는 548만여건에 달한다. 국민 10명 중 1명은 자기도 모르는 새 신상정보가 털린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이 조항이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통신자료 조회 규정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내놓았다. 시민단체는 2016년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런데도 헌재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무려 6년을 미적거리다가 이제야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사후 통지 없는 수사기관의 조회 남발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는 수사 단계부터 합리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내년 말까지 입법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전기통신사업법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