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이라니. 혼자 한참을 웃었다. 나를 좋아해 달라든지 연애를 하자 할 상황인데, 게다가 젊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추앙을, 그것도 나에게 해 달라니. 추앙의 끝이 궁금했다. 그래서 더 몰입했는지 모르겠다. 추앙이 환대로 이어질 줄은 예상 못 했다. 매회 미소를 머금게 했지만 보는 내내 마음은 무거웠다. 한동안 지인들과의 대화 주제는 흰자, 추앙, 환대, 해방이었다.
12회가 방송될 무렵에서야 많은 사람이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보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2~4회씩 14회까지 몰아보고 마지막 회를 기다릴 무렵, 같은 기간 방영했던 다른 드라마를 추천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많았다. 해방의 묵직함을 털어내기도 전에 블루스 선율에 감정을 맡겨야 했다. “살아있는 모두 행복하라.”
그러곤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소문 난 드라마가 없기도 했고, 두 드라마가 주는 여운이 길었던 탓도 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이상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뻔할 것만 같던 내용은 뻔하지 않았다. 또 다른 무거움이었다. 1, 2회를 대충 보고 일단 접었다. 회별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끊어 보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우영우에 대한 글들이 나왔다. 며칠 전 밤 참지 못하고 우영우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텔레비전 문제인지, 회선의 기술적 문제인지,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했는지 유독 우영우만 까만 화면에 빨간 원만 빙빙 돌 뿐이었다. 잠깐잠깐 본 장면 속 대사 일부는 이렇다. “죽을 줄 알면서 다친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어미 고래” “봄날의 햇살”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뤄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뤄지는 세계에 사는 데 더 익숙해요.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매 순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해요”….
막간을 이용해 새 드라마를 봤다. ‘안나’였다. 6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다. 찾아보니 정현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각색한 내용이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훨씬 더 많이 변신한다고 돼 있다. 원작이든 드라마든 검색하면 내용을 알 수 있지만 여기선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다만, 처음에는 10여년 전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어떤 인물이 떠올랐고,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인물이 겹쳐 보였다. “사람은 자기가 쓰는 일기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의 삶과 사회 현실이 투영될 때 더 많이 회자된다. 밝을 때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갔는데도 깜깜한 밤에서야 현관을 들어서는 달걀흰자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로 불려 본 적 없고, 한 번도 가득 채워진 적 없다. 살면서 재미없기도 하고 심각할 수 있고 좋았다 나빴다 하는 걸 알지만 웅크려 든 마음을 펴기 힘들어한다. 사랑받아야 할 관계에서 관심은커녕 볼품없음만을 종종, 아니 자주 확인하곤 한다. 법은 늘 내 편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진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 거짓 속에 빠진다. 거짓에 빠진 이는 처음에는 들킬까 조바심에 긴장하고 걱정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속고 그 거짓으로 지위와 힘을 얻게 되면 노력해서 얻었다고 믿는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크다. 그래도 생각과 제도를 ‘조금만’ 바꾸면 다운증후군 아이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민을 감행하는 부모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조금만’ 공정해지면 길에서 내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소리치는 일을 줄일 수도, 거짓으로 지위나 힘을 얻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조금’이면 시작할 수 있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