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는 책에서 언급된 낯선 제목의 책을 발견하면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고 자각한다. 모른다고 좌절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크고 웅장한 책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배가된다. 만약에 어떤 책이 해외 작가의 서평 에세이라면 낯선 제목의 책들은 페이지마다 발견된다. 그가 읽은 책들이 국내에 모두 번역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다.
나는 왜 서평 에세이를 읽을까. 책을 입체적으로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맥락을 찾아 자신의 삶을 책과 엮는 서평자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 몇십 년에 걸쳐 쓰인 해외 작가의 서평 에세이를 읽는 밤은 고요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비현실적이다. ‘서평의 언어’를 쓴 메리케이 윌머스는 작년까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으로 일했다. 90세 넘어까지 현장에서 글을 고르고 편집했다. 1938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이동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성장했고 영국에 정착했다. 79년 런던 리뷰 오브 북스를 공동 창립한 뒤 92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한 저자의 이력에 단박에 끌렸다.
“한때 아이가 내 것이었다면 이제 내가 아이의 것이다. 나는 아이의 허락 없인 잠을 잘 수 없었고, 내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밥을 먹었고,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죄책감을 느꼈고, 늦게 귀가하는 건 아이의 존재 수단을 제멋대로 빼앗아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책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은 50년 전 쓰인 것이다. 당시 육아서를 읽으며 메리케이는 모성이 자연스럽게 차오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대입한다. 어머니와 아이가 맺는 관계에서 마법처럼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이 육아에 관한 한 논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자발성을 구호 삼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렇게 신랄한 자기 고백의 글로 시작한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정신분석을 6년 동안 받았던 경험은 이 분야 책에 대한 적나라한 비평으로 귀결된다. “요새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프로이트의 명성을 유지하고자, 그가 품은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지켜내고자, 논의를 차단하고자 그토록 애쓰지만 않았더라도, 또 예컨대 이들의 아카이브가 여느 아카이브와 마찬가지로 학자들에게 열려 있기만 했더라도, 프로이트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작디작은 근거를 발견할 때마다 메이슨 같은 이들이 이렇게 열을 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70년대 국제정신분석학계에 등장한 제프리 메이슨이 프로이트에 대한 혁신적이고 이단적인 개념을 만들어낸 사실을 놓고 쓴 대목이다.
저자가 선택하고 읽고 메모하며 쓴 책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과 삶을 촘촘히 박았다. 좀처럼 알 만한 책명이 나오지 않는 에세이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나는 쾌감을 느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전혀 몰랐던 세계의 끝까지 왔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마지막 챕터의 소제목은 ‘무슨 이런 어머니가’다. 전미도서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 메리앤 무어의 억압적 모녀 관계에 대한 고찰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다. “메리앤은 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주로 한 침대를 썼다. 어머니가 여든다섯을 일기로 사망했을 때 메리앤은 쉰아홉 살이었다. 그 뒤로 행복한 독신 여성이자 유명한 시인으로서 25년을 더 살다가 1972년에 사망했다.” 2015년 메리앤의 삶과 작품을 다룬 책이 출간되자 메리케이는 여성 시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뿌리를 찾았다. 메리앤은 자신의 삶을 적극 지배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언어로 시 세계를 확보하며 완전히 독립한다. ‘메리앤만큼 세상을 전폭적으로 즐긴 시인은 없다. 여성 시인 중에서는 더더욱’이라는 메리케이의 결구는 여성의 독립적 삶과 뗄 수 없는 언어의 자유로움을 환기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무수한 사람을 만났다. 필수적인 정보와 지식을 알기에도 바쁜 세상이라지만, 모르는 게 많아서 또 재밌는 세상이기도 하다. 모르는 만큼 오래된 새로움은 넘쳐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