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청와대를 고작 미술관으로 바꾼다고?

입력 2022-07-21 04:05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얼마 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활용 방안과 관련, “역사성·상징성과 함께 자연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술관·공연장·도서관 등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생각에 반대한다. 미술관 등으로 용도 변경되며 건물 원형이 훼손되는 순간, 문체부가 살리겠다는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형해화될 수 있어서다.

청와대는 과거와 당대의 권력 모두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장소만의 매력이다. 우선 당대 권력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들여다보자. 청와대 건물은 1990년대 초반 신축됐다. 90년 관저가, 91년 본관이 완공됐다. 50년도 되지 않는 건물이지만 이곳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상징이라는 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게다. 청와대가 대한민국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로 쓰여야 한다는 김정현 홍익대 교수의 제안은 그래서 솔깃하다. 광화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있긴 하지만 청와대는 건물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이자 아카이브다.

물론 광복된 뒤에도 번듯한 최고 통치자의 집무실 하나 갖지 못하고 일제가 궁궐 건축물을 부수고 지은 총독 관사를 그대로 쓴 불운한 역사도 서려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단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이룩한 나라다. 그런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경주 수학여행 가듯 그렇게 기념할 장소 말이다. 김 교수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독립역사공원’을 사례로 들었다. 필라델피아는 신생 국가 미국의 두 번째 수도로 겨우 10여년 사용됐지만 당시의 대통령 집무실, 건국의 대표 인물인 벤저민 프랭클린 생가터 등 근대 유적을 보존해 공원화했다.

윤석열정부는 우리도 지금 청와대를 개방해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 있겠다. 지금의 개방 방식은 권력자의 공간을 구경하는 호기심 충족 차원에 그친다. 청와대를 어떤 공간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정책 철학이 없다. 일제강점기 궁을 위락 시설로 바꾼 창경원의 판박이가 됐다는 한탄도 나온다. 김 교수는 “필라델피아 독립역사공원은 관람 분위기가 아주 엄숙했다”며 “‘몽테스키외의 3권 분립을 최초로 헌법에 채택한 나라 미국’ 등 미국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말했다.

청와대 터가 갖는 과거의 역사가 더 놀랍다. 청와대 권역이 권력 공간으로 쓰인 역사는 1000년 가까이 된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남경으로 개발됐고, 고종 21년(1234)에는 새로운 궁궐을 지었다. 공민왕은 남경 천도를 추진하기까지 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궁궐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왕과 신하가 결속을 도모하며 회맹제를 지내는 등 권력을 위한 장소로 쓰였다. 마침내 고종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곳은 궁궐 영역으로 포함돼 경무대가 조성됐다. 문무 과거 시험이 이곳에서 치러지고 활쏘기와 무예 시범이 열렸다.

청와대를 전광석화처럼 개방하고 관람객 숫자를 홍보하는 것은 문화정책으로서는 수준이 낮다. 국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청와대의 활용 방법은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검토, 국민 의견 수렴 등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청와대를 역사적인 장소, 즉 사적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사적 지정은 혹시 있을지 모를 개발 혹은 성급한 활용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 현상 변경 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필라델피아 독립역사공원도 66년 우리나라의 사적에 해당하는 국가역사기념물에 등록됐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공원 내 독립기념관(13개주 대표가 모여 독립선언을 결의한 장소)은 79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