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었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이다. 그 1시간29분 뒤인 오전 10시17분 세월호는 완전히 전복됐다. 그날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에 기록돼 있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렀다. 몸이 좋지 않아 본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관저에서 업무를 처리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의 서면보고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사실을 안 시점은 그날 오전 10시쯤이었다. 그에 앞서 국가안보실은 오전 9시24분 청와대 주요 직위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 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헌법재판소는 이 대목을 집중 추궁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만약 피청구인(박 대통령)이 오전 9시에 집무실로 출근해 정상 근무를 했다면, 청와대 주요 직위자에게 전파된 내용을 당연히 보고받았을 것이므로, 오전 9시24분쯤에는 (사고)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피청구인이 당일 오전 집무실로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따라 구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에 30분 이상 발생 사실을 늦게 인식하게 됐다”고 꾸짖었다.
박 대통령은 오후 3시가 돼서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했다. 오후 3시35분쯤 미용 담당자가 들어와 20분가량 머리 손질을 했다.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도착한 시간은 그날 오후 5시15분이었다. 이것이 ‘박근혜 세월호 7시간’의 전말이다. 박 대통령의 그날 행적은 어떤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동안 일류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지도 않았고, 청와대 내에서 굿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은둔 이미지는 루머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전복됐지만, 그 이전에 ‘세월호 7시간’ 풍문으로 급속히 가라앉았다.
요즘 여권의 가장 큰 고민은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32%까지 떨어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윤 대통령 부부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해서도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이 김 여사를 수행했다는 논란이 터져 나왔다. 김 여사가 움직일 때마다 무속·비선 논란이 일고 있다. 루머는 팩트보다 빨리, 그리고 넓게 퍼진다. ‘박근혜 세월호 7시간’ 풍문이 그 반면교사다.
논란을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2부속실이라는 공적 조직을 설치해 김 여사를 보좌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여권에서 나오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을 지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분석된다. 또 이제서야 제2부속실을 설치할 경우 김 여사 논란을 일정 부분 시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제2부속실을 만들면 김 여사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등이 공개되는 것도 꺼리는 눈치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폭우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났으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밑에 계속 있다가 익사했다는 얘기다. 상황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맹목적으로 약속 지키기에 매달릴 때 발생하는 폐해를 꼬집는 고사성어다. 공약을 지키는 것보다 풍문을 잠재우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제2부속실 설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