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온다. 이렇듯 자살은 전염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19일 발표한 ‘심리부검’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복지부는 최근 7년(2015~2022년)간 19세 이상 자살 사망자 801명과 그 유족 952명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진행했다. 심리부검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조사 방법이다. 그 결과 자살 유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있다고 했다. 자살 사망자의 5명 중 2명은 극단적 선택에 앞서 가족 또는 친구 지인을 같은 방식으로 여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 등 자살 사망자 주변인에 대한 사후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자살 유족은 갑작스러운 사별로 심리적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도 직면한다. 심리지원과 복지 서비스를 병행한 지원 사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자살 사망자의 94%는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이를 알아채는 가족과 지인의 인지율은 22%에 불과했다. 이들은 수치심 외로움 절망감 무기력감 등을 표현하고 평소보다 화를 자주 내거나 짜증을 많이 내며 멍하게 있는 등 감정 상태의 변화가 있었다. 자살 유발 요인은 겹쳐서 왔다. 부모 자녀 등 가족관계, 부채·수입 감소 등 경제적 문제, 실직 등 직업 문제 등이다.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도 36%에 이른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2975명이다. 인구 10만명 당 25.1명인 자살률은 부동의 세계 1위다. 자살은 10~30대 사망 원인 1위, 40~50대 2위를 차지한다. 이 정도면 자살은 암보다 치명적인 질병인데다 주변으로의 전파력도 크다. 정부가 2004년 국가 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했지만 여전히 자살은 한국 사회의 큰 문제다. 자살을 예방하고 질병처럼 치료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어디선가 경고음을 보내고 있을 주변인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자살 고위험군 사후관리 강화 등이 포함된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연내 수립할 계획이다. 이번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더 이상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안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