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마약왕

입력 2022-07-20 04:10

‘전세계’라는 텔레그램 가명을 쓰며 ‘마약왕’으로 불렸던 박왕열(44)씨는 현재 필리핀 감옥에 수감돼 있다. 박씨는 2016년 필리핀 팜팡가주의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했다. 필리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20년 다시 체포돼 60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동남아에서 필로폰 등을 국내로 밀반입했던 마약 밀수조직 총책 최모(35·여)씨는 지난 4월 캄보디아에서 체포돼 송환됐다. 탈북자 출신인 최씨는 한때 ‘최지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전세계’ ‘최지은’과 함께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통했던 ‘사라 김’ 김모(47)씨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붙잡혀 19일 국내로 강제송환됐다. 사라 김 역시 텔레그램 가명이다. 동남아가 한국 마약사범들의 주 무대가 된 것은 태국-미얀마-라오스 3국 접경 산악지대에서 생산되는 값싼 마약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아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엔 ‘필로폰 4대 거물’이 있었다. 필로폰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천식치료제를 만들다 합성해낸 물질이다. 1951년까지 합법적으로 판매되다가 중독자가 급증해 불법이 됐다. 이후 일본에서 필로폰 제조 기술을 배운 한국인들이 일본을 상대로 한 마약 밀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마약왕’의 배경이다. 주인공 이두삼(송강호 분)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이황순을 비롯해 심상호 최재도 최판호가 4대 거물이었다. 다들 일본에 필로폰을 팔아 엄청난 부를 이루었으나 끝은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drug free country)이 아니다. 마약류 사범이 10만 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2016년 이미 25.2명이었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이 1만6153명이었다. 검거된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100만명 정도가 마약을 하고 있다는 추정도 있다. 텔레그램 등을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10대 마약류 사범도 폭증 추세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