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누가 정태춘을 투사로 만들었나

입력 2022-07-20 04:02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DJ가 1970년대를 회고하며 “나는 장발 단속이 그렇게 싫었어요”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른바 ‘퇴폐 풍조’를 퇴출한다며 남성의 머리카락이 귀를 넘는 경우 자르도록 명령했다. 실제로 단속반원이 바리캉을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강제로 머리를 밀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라디오에서 배 DJ가 회고하는 목소리엔 강제로 머리 깎는 행위 자체에 반감도 있지만, ‘내 머리를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국가가 웬 간섭인가’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예술가에겐 그런 사고 회로가 있구나, 새삼 느끼는 계기였다. 장발을 단속하건 스킨헤드를 단속하건, ‘간섭’ 자체가 싫은 것이다.

얼마 전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이 정태춘을 투사로 만들었는가. 알다시피 정태춘은 79년 신인가수상을 받은, 지금으로 말하면 혜성처럼 등장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의 노래는 가사가 절창이라 도대체 어떤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런 노랫말을 쓸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다. 달리 그를 음유시인이라 불렀던 것이 아니다. 그런 그가 80년대 중후반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고, 90년대에는 공연 무대보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었다.

심의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음반을 제작하려면 한국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받아야 했다.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 이건 안 되고 저건 고치라는 식이었는데, 그게 흔히 ‘19금’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저해’되는 내용은 몽땅 바꾸라는 식이었다.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을 보자.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라고 시작하는 따뜻한 이 노랫말조차 군사정부에서 손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가사 가운데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는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로,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은 ‘맑은 한 줄기 산들바람’으로,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로 바꾸라 지시했다. 그 시절엔 정말 왜 그랬던 것인지. 이러니 정태춘이 투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벌어진 해괴한 일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 되고 분노했던 것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일이다. 지원금 수혜 대상자를 가리는 ‘기준’으로 작성했다고 변명하지만 자그마치 1만명에 달하는 그 리스트는 누군가를 배척하는 용도로 수년간 활용되었고,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예술계가 보수 진영에 등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명단에는 심지어 요리연구가 박찬일 셰프까지 포함돼 있었다.

알고 보면 창작자는 태생이 자유주의자다. 권위주의 시대에 자유주의는 좌파와 쉽게 연대의 끈을 맺었다. 그렇다고 문화예술인은 모두 좌파라고 치부해 버려서야 될까? 좌파면 또 어떤가. 그들의 비판적 표현을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포용하면 되는 것이지 ‘머릿속에 든 생각’을 억지로 바꾸거나 배제하려 시도하다 더욱 큰 저항만 부를 따름이다.

강조컨대 윤석열정부는 문화예술계에서 좌우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정부 이래로 고수되어 온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양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거기에 누구 잘잘못을 따질 일도 아니다. ‘시인의 마을’을 살린 사람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되고, 자유주의가 좌파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할 일이다. 정부가 바로 잡겠다는 일체 노력은 망상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