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부채 탕감

입력 2022-07-19 04:10

부채 탕감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인 기원전 2400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됐다. 도시국가 라가쉬의 엔메테나 왕이 움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나라의 모든 부채를 탕감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빚 때문에 노예로 끌려간 아들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부채, 그 첫 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기원전 594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집정관 솔론이 행한 개혁의 핵심도 부채 탕감이었다. ‘무거운 짐 덜어주기(세이사크테이아)’로 불린 정책을 통해 담보로 압류당한 농경지를 포함, 아테네에 남아 있는 모든 부채를 없애고 인신 담보 대출을 금지시켰다.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고 그리스 내 도시국가 주도권을 잡은 게 솔론의 개혁 덕분이다.

구약에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빚을 탕감해야 한다고 적혀 있고 조선시대에도 흉년이 들 때는 비슷한 정책이 시행됐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부채 탕감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빚으로 고통을 받는 서민의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탕감으로 기사회생과 새 출발이 가능해지는 것은 순기능이다. 하지만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다. 정부가 최근 34세 이하 신용 불량 청년들에게 최대 50% 이자 감면, 소상공인에게 최대 90% 원금 탕감을 골자로 한 금융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이들과의 역차별 논란이 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1위다 보니 정권 취임 초마다 탕감 정책이 빠지지 않는다. 이명박정부는 720만명 신용대사면, 박근혜정부는 채무불이행자 322만명 구제, 문재인정부는 장기연체자 123만명 부채 탕감을 발표했다. 코로나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달아오를 때 많은 이들이 대출을 통해 투자에 나섰다. 지금 아니면 자산을 모을 수 없다는 조바심이 가장 컸다. 재기 기회 마련, 사회가 부담할 미래 비용 등을 고려하면 인플레 시대 빚 감면을 무조건 불온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탕감 횟수는 최대한 적게, 시점과 대상은 정밀하게 선택해야 하는 게 답이 아닐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