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자는 누가 감독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 고래로 국가의 본질적 딜레마다. 1993년 2월 24일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하루 전날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그런데 가장 큰 걱정 중의 하나가 바로 친인척이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 당선자는 부정부패를 반드시 도려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불탔다. 하지만 1997년 소통령으로 불린 아들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지시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삼 형제도 모두 구속됐고, ‘홍삼 트리오’란 조롱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도 뇌물을 수수했다. 세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의 거인들이었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 친인척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었다. 대통령 개인의 의지로는 비리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1987년 한국은 천신만고 끝에 민주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하나의 결정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통령 직선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권력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는 제왕적 권력에 오염되고, 자리와 이권을 노리는 권력형·친인척 비리가 멈추지 않았다. 모든 대통령의 말로도 비극적이었다.
그 해독제로 도입된 게 특별감찰관제였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처음 공약하고, 2014년 2월 특별감찰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 직무는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에 대한 감찰’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을 감시한다. 2015년 3월 이석수 변호사가 첫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6개월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위 정보 입수나 감찰 건수가 ‘0건’임이 밝혀졌다. 법 제정 때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특별감찰관은 수사권이 없다. 치명적 한계다. 감찰을 착수하고 종료할 때는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식물감찰관에 가깝다.
이런 특별감찰관조차 권력자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2016년 8월 사직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를 감찰하다 쫓겨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내사했기 때문이었다. 특별감찰관실도 초토화됐다. 김현철 사건 때 김영삼 대통령은 “온갖 번민과 회한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탈권위를 부르짖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친인척 문제를 보고하면 양미간을 찌푸리는 등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이러니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놓고 법을 무시했다. 특별감찰관을 아예 임명하지 않았다. 그사이 전병헌 정무수석은 뇌물수수 등 혐의로 사법처리됐고, 임종석 비서실장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초래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특감반 비위, 사모펀드 의혹 등에 휩싸였다.
지난 6년간 특별감찰관은 공석이었다. 최근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실의 직원 채용,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논란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도 결정적이다. 최근 넥스트리서치 조사에서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20.3%에 달했다.
이제 와서 보면, 특별감찰관의 감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살릴 수도 있는 영약이었다. 특별감찰관만 있었어도 사태가 그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선한 권력, 무오류의 권력은 없다. 나만 예외라고 생각하면 오만이고, 큰 착각이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법치의 잣대를 자신의 가족에게도 균등하게 적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대통령직의 영광은 짧고 고뇌는 길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라. 영광은 길고 고뇌는 짧아질 것이다.
김영수(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