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임금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임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상된 임금이 물가를 더 높이고 상승한 물가가 다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나선 효과’가 6%대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환율 역시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다만 물가상승률이 7~8%대까지 치솟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기술사무직 노조는 올해 임금을 지난해 연봉 대비 5.5% 올리고 추가로 기준급을 월 10만원 정액 인상하는 안에 잠정 합의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임금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기본급 4.3% 인상과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경영성과급 지급 등 세부내역을 총합하면 9%가량 연봉이 오른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5.0%)보다 가파른 대기업 중심의 임금 인상은 미국에서 나타난 임금 인상발(發) 물가상승을 재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기업들은 코로나19로 구인난이 심화하자 경쟁적으로 임금을 인상했다. 인상된 임금은 제품 가격에 반영돼 물가를 끌어올린다. 이는 국제유가 등 다른 요인과 맞물리며 지난달 미국 물가상승률(9.1%)을 견인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임금발 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임금 인상분이 2021년 1분기 물가상승률에 미친 영향은 0.07% 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임금 인상분은 지난해 4분기 물가상승률을 0.22% 포인트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채 1년도 되지 않아 임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3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고공행진 중인 환율도 물가 안정화의 걸림돌이다. 원·달러 환율이 1320원을 돌파하는 등 고환율 추세가 이어지면 수입 물가가 안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입 물가 상승은 제조단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소비자 판매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최근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진 상황 등을 고려하면 추석 이후 물가가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민생 대책이 하반기에 효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뒤따른다. 할당관세를 적용한 수입산 소고기·닭고기 등이 시장에 풀리면 먹거리 물가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마 이후 채소 작황이 회복되면 농산물 물가 상승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더라도 기존 전망치보다는 높은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3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9, 10월까지는 불안한 양상이 이어지겠지만 7~8% 수준의 물가상승률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연간 물가 수치 전망에 일부 변동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