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 호박’ ‘검은 줄무늬’… 현대미술 거장의 향연

입력 2022-07-18 04:06
‘땡땡이 호박’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 ‘검은 줄무늬’가 아이콘인 다니엘 뷔렌의 개인전이 각각 서울의 신생 갤러리 S2A, 공립미술관인 대구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쿠사마 야요이의 보험가 200억원 짜리 100호 ‘호박’(1995년). 뉴시스

현대미술 거장의 향연이다. 서울에선 ‘땡땡이 호박’의 쿠사마 야요이(93·일본)를, 대구에선 ‘검은 줄무늬’가 아이콘인 다니엘 뷔렌(94·프랑스)의 개인전이 열린다.

글로벌세아 그룹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옥 S타워 1층에 마련한 갤러리 S2A의 개관전 ‘쿠사마 야요이: 영원한 여정’은 지난 15일 오픈 전부터 화제가 됐다. 글로벌세아 그룹 김웅기(71) 회장이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작가 최고가인 132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점화 ‘우주’의 소장자임이 밝혀져서다. 유니클로 등 해외 의류를 OEM 제작하는 글로벌세아 그룹은 최근 쌍용건설 인수에 나서는 등 이슈의 중심에 있다.

김 회장은 제조 기업에서 문화 기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갤러리를 열었고 그 첫 전시로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작가이면서 자신의 첫 컬렉션 대상인 쿠사마 야요이를 택했다. 전시에는 ‘녹색 호박’(1993년 작)과 ‘6월의 정원’(88년 작) 등 김 회장 소장품 2점을 포함해 국내 컬렉터가 소장한 쿠사마 야요이 작품 40여점이 총출동했다.

은색 입체 작품 ‘별이 흐르는 호박’(2021년). 뉴시스

보험가액만 200억원에 달하는 100호 ‘노란 호박’(95년 작)과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에서 국내 시장 최고 낙찰가(54억5000만원)를 기록한 50호 ‘노란 호박’(81년 작)도 공개됐다. 76년 작부터 2001년 작까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땡땡이 호박은 초기에는 줄무늬 경계에 굵은 점이 모여 있지만 후기로 갈수록 정중앙에 굵은 점이 모여 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노랑 땡땡이 호박’뿐 아니라 ‘초록 땡땡이 호박’ ‘땡땡이 해바라기’ ‘단색형 땡땡이’ 등 다양한 평면 작업과 함께 입체 작품도 볼 수 있다.

많은 점이 무한 반복되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에는 어린 시절의 불행이 반영돼 있다. 부유했지만 화목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망쳐야 했다. 숨어 지내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붉은 꽃무늬 식탁보가 잔상으로 남아 온 집안과 자신의 몸을 뒤엎는 환각을 경험했다. 환각이 작품의 모티브가 돼 결국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그물망 회화와 호박 연작이 소개되며 글로벌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쿠사마 야요이는 지금 정신병원의 종신환자를 자처하고 병원 근처에 마련한 스튜디오로 출퇴근하며 작업하고 있다. 9월 14일까지.

대구 수성구 미술관로 대구미술관은 2013년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을 대규모로 열어 전국적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 최초로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다니엘 뷔렌을 소개한다.

다니엘 뷔렌의 설치 작품 ‘어린아이의 놀이처럼’(2014년)의 여러 모습들. 대구미술관 제공

뷔렌이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건 1968년이다. 당시 세계적 큐레이터인 하랄드 제만이 스위스 베른에서 미술사에 회자되는 ‘태도가 형식이 될 때’를 기획했다. 전시에 초대받지 못한 30세의 청년 작가 뷔렌은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줄무늬가 섞인 벽보를 거리 곳곳에 붙였다. 뷔렌은 이후 규격화된 미술관을 벗어나 현장을 중시하는 작업을 하며 공공미술의 대명사가 됐다. 특정한 장소에 전시하며 장소의 맥락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인 시튜’(In Situ) 개념을 주창하며 지난 50년간 프랑스의 팔레 루아얄,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베이징 천단공원, 도쿄 긴자식스, 런던 토트넘 코트 로드 역 등 세계 곳곳의 기념비적 건물과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그때마다 사용한 8.7㎝ 폭의 줄무늬는 버버리의 체크무늬처럼 미술가 뷔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작업실이 따로 없고 전시하는 장소가 곧 작업공간”이라는 노장은 대구미술관에 거대한 설치 작품을 냈다. 로비 자체를 전시 공간으로 쓴 어미홀에는 아이들 장난감인 블록쌓기를 뻥튀기한 듯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전시했다. 관람객은 거인 나라에 온 걸리버가 된 기분으로 사면체 육면체 원통형 아치형 등 다양한 형태를 써서 쌓은 원색 블록 사이를 거닐며 선과 색을 향유한다. 전시장을 절반으로 나눠 데칼코마니하듯 한쪽은 원색, 다른 쪽은 흰색 조형물을 설치한 게 눈길을 끈다. 색이 없는 세계가 어떤 건지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작가는 “사람들이 형과 색을 보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이 공간을 즐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5번째 전시지만, 2·3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는 한국이 처음이다.

다른 전시장에는 초기의 줄무늬 회화 작품과 함께 2015년 이후 제작한 신작 입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벽면에 설치한 입체 작품은 사면체 마름모 등 도형을 조합했는데 거울효과를 내는 플렉시글라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관람객은 자신이 비치는 모습을 보며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입체 작품에는 아이콘이 된 줄무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측면과 윗면 등 보이지 않는 위치에 슬쩍 숨겨 놓았다. 전시장 곳곳에 보이는 도형의 질서에서 몬드리안을, 색이 주는 즐거움에서 마티스가 떠오르는 선과 색의 향연이다.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대구=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