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가치가 연일 초강세를 보이자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달러 강세가 각 국가의 통화가치를 흔들고, 기업의 수익성까지 악화시키며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 등으로 일부 신흥국은 국가 부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최근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주요 6개 통화와 비교해 달러 가치를 산출하는 달러인덱스는 108.06을 기록했다. 달러인덱스가 108선으로 오른 것은 2002년 10월 이후 거의 20년 만이다. 올해에만 달러인덱스는 10% 넘게 치솟았다.
문제는 달러 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주요국 통화 가치를 결정해 각 국가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본 엔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2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유로당 달러 환율도 20년 만에 심리적 저지선인 1대 1(패리티)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 원화의 가치는 하락 폭이 크지는 않지만 20년 만에 달러당 1300원대를 넘어섰다. 전직 미 재무부 관리인 마크 소벨은 뉴욕타임스(NYT)에 “매우 이례적인 달러 강세”라며 “달러는 1960년대 이후 세 번만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축 통화의 가치가 단기간에 급변하면 달러로 돈을 빌린 정부나 기업은 이자나 원금 상환 부담이 커져 재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각 국가는 물가 추가 상승 압박과 무역수지 적자 확대에 직면하게 되고 특히 신흥국은 무역, 물가, 외채, 자본시장 등 각 부문에서 악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점도 문제다. 체코, 폴란드, 브라질 등 대다수 신흥국의 물가가 급격히 상승한 이유다. 이로 인해 일부 국가는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할 때 달러로 갚아야 하는 외채의 비중이 높아져 국가 부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NYT는 “달러 강세로 아르헨티나, 튀르키예(터키)와 같이 통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국가에서는 채권자에게 달러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특히 어렵다”고 분석했다. 부채에 대한 이자가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기초체력이 탄탄하지 않다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6월 말 기준 통화가치가 21.4% 하락했고, 아르헨티나는 17.7% 떨어졌다.
스리랑카는 이미 달러 강세, 원자재 가격 급등, 국내 불안 등이 겹치며 510억 달러(66조원) 규모의 국가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5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 스리랑카에 이어 채무불이행에 가장 취약한 5개국으로 엘살바도르, 가나, 이집트, 튀니지, 파키스탄을 꼽았다.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신흥시장 국가의 30%, 저소득국의 60%가 채무 곤경에 빠졌거나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국적 기업들도 달러 강세에 울고 웃는 모습이다. NYT는 해외 사업을 대규모로 운영하는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의 기업 이익이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은 해외 매출을 달러로 환산해야 하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이외의 지역에 기반을 둔 회사들은 달러 강세로 매출이 증가했다. 영국 명품업체 버버리는 지난 15일 환율 변동 영향으로 올해 매출액이 2억 달러(2600억원)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여행자들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미국 여행자는 높아진 달러 가치로 인해 해외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반면 달러를 사야 하는 여행자는 반대 상황에 놓인다.
NYT는 당분간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은 최근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전 세계 어느 중앙은행보다도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높이고 있다.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돈이 미국 시장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의 엔저 전략,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전략에 따른 공급 차질,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달러 강세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BNP파리바 은행의 캘빈 채는 “이런 상황은 달러 강세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