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살벌한 여름

입력 2022-07-18 04:10

영국 런던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이번 주 지하철 탑승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19세기에 지은 런던 지하철은 대부분 에어컨이 없어서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어 터널 속 더러운 바람을 들이는 게 고작인데, 이번 주는 그 바람마저 치명적으로 데워질 폭염이 예고됐다. 2019년의 역대 최고 기온 38.7도를 넘어서는 40도 땡볕이 예보되자 찜통 지하철에서 쓰러지거나 죽는 사람이 나올까봐 타지 말라 한 것이다. 최고 35도였던 1976년 폭염 때 런던 사망자는 예년보다 30%나 급증했다. 그 악몽을 떠올린 영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어컨을 갖춘 집이 1%밖에 안 될 만큼 더위를 모르고 살아 온 영국이 이 정도니 남쪽의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은 말할 것도 없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요즘 하루에 몇 번씩 집 옥상에 올라가 물을 뿌린다고 한다. 너무 뜨거운 햇볕에 불이 붙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최고 45~47도 폭염이 극심한 가뭄과 함께 덮친 세 나라는 빈발하는 산불에 이미 수천㏊씩을 잃었다. 수백명이 죽고 수만명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 달째 폭염이 이어지는 프랑스 일부 지역에선 야외 행사는 물론이고 에어컨이 없는 실내 행사도 금지됐다. 이탈리아는 농업용수를 조달하는 강이 말라붙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달 초 시작된 그리스의 대형 산불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유럽 폭염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뜨거운 고기압이 상공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와 기후변화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상황은 차분하게 정보를 전달하던 TV 일기예보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지난달 “프랑스가 불타오를 거란 얘깁니다”라고 자극적 표현을 사용한 파리의 기상캐스터는 “기후변화 재앙이 여러분 뇌리에 각인되도록 이제 예보 스타일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난리를 먼 나라 얘기로 넘길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마전선이 물러가면 한국도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설 텐데, 얼마나 살벌한 날씨가 기다리고 있을지…. 일상이 됐지만, 이상기후는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