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이상한 포스트 코로나

입력 2022-07-18 04:05

3년 만에 해외 출국을 하러 인천공항에 갔다.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계산했는데 영수증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 한 보루 가격(30달러)은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했지만 원화로 표기된 결제 문자에는 3만9750원이 찍혔다. 국내 담배 한 보루 가격은 4만5000원. 최근 원·달러 환율이 오르며 면세 담배와의 가격 차이가 5000원 수준으로 좁혀졌다. 달러 가격표가 붙은 다른 상품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부 화장품이나 가방은 국내 인터넷 가격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모처럼 싸게 물건을 사볼까 하던 기대감을 내려놓고 서둘러 비행기에 탔다.

요동치는 환율에 신음하는 건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시아 한 국가의 주유소에선 ℓ당 휘발유를 한화로 약 4500원에 팔고 있었다. 일본산 물안경 가격은 6만원이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과일이나 길거리 음식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수입품 위주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심지어 커피도 원두가 동남아산이냐 외국산이냐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이 나라 화폐 대비 달러 환율 차트를 보니 원·달러 차트보다 더 기울기가 가팔랐다. 달러 대비 화폐 가치가 원화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는 뜻이다.

달러당 1000원이던 환율이 갑자기 1300원으로 오르면 1만원이던 제품을 1만3000원 주고 사야 한다. 물건값이 하루아침에 30% 오른 것과 같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9.1% 상승하며 40년 만에 가장 높게 올랐는데, 환율이 30% 오르면 같은 물건을 사는 한국 소비자의 체감 물가상승률은 40%에 달한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자국 화폐 가치에 따라 소비력에 큰 차이가 벌어지는 셈이다. 실제 애플은 엔화 약세에 대응해 최근 일본 내 아이폰 판매가를 20% 넘게 올렸다.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2020년 3월에도 환율 상황은 비슷했다. 코스피지수가 1500선 아래로 떨어진 날 서울 명동 사설 환전소를 돌아다녔는데, 달러 환전이 가능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길거리 경제’부터 불안 심리가 팽배한 탓이었다. 지금은 코스피지수가 2300선을 오가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그때보다 더 높은 1325원까지 치솟아 1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로나 패닉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제히 ‘달러 확보’ 전쟁을 벌였던 때보다 지금의 공포감이 더 강한 셈이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예상했는지의 여부였다. 감염 확산세에 전방위적 록다운이 펼쳐졌던 그때와 달리 금리 상승으로 인한 경기 긴축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식·부동산에 가상화폐까지 자산 가격 상승에 빠져있던 터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갑작스러운 금융 쇼크도, 거대 기업의 부도도 없는 상황에서 살림살이만 팍팍해지고 있다. 우리는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지는 이상한 경제 위기를 경험하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만 끝나면 모든 게 예전처럼 회복될 것이란 희망은 점차 절망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우리가 상상했던 포스트 코로나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일터와 상점이 다시 가득 차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는 일상이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 긴축 강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경기 둔화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이 바이러스까지 온통 최악의 뉴스로 가득하다. 코로나 시국을 극복하기 위한 양적완화는 물가 상승과 양극화라는 후폭풍으로 돌아오고 있다.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며 치료받을 때는 몰랐지만, 상태가 호전된 뒤 비싼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코로나 3년차에서 물가와 금리와 환율이 모두 오르는 한국 경제의 모습은 거품이 제거된 포스트 코로나의 단면이다. 전문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지출과 빚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며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리라”고. 코로나도 경제 위기도 모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이다. 월급 빼고 모든 것이 오르는 이상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우리는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