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부모님 은혜

입력 2022-07-14 20:26

입구라고 생각했는데 출구였다
전생의 부모님은 죽어서 약초가 되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밭이 자갈돌을 품고 있다 신문을 읽으면
차별을 알게 된다 나는 너와 다르다
시계의 1초들처럼 이슬비가 내린다
은혜 갚는 줄도 모르고 쥐는 고양이를 피해 달렸다 고양이는 민화
속의 호랑이처럼 근심걱정을 잽싸게 낚아챘다
어진 그릇과 대접이 굶주림을 달랜다 울지 마라 아가야
가족은 나의 직장이다
나는 실직했다 해인사에 갔다
지나가는 행락객이 중국산 산나물이라고 했다 큰 대접에
비빔밥을 비벼먹고 대청마루 소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하늘을 내려다보았다 낮잠 자고 있는 딸의 주먹을 펼쳐보니 영롱한
구슬이 땀에 절어 있다 인생은 정밀한 기계다
말씀으로 생겨난 세계라 가끔은 벙어리가 되었다
내용이 뭐냐고 물으니 백지는 유리거울이 되어 금이 갔다
동그란 거울이었다 참을성 많은 아내를 가져
나는 행복하였다

-박판석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중

실직한 젊은 아빠의 하루와 그 내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자신을 찾아온 불운과 불안에 식은 땀을 흘리는 아빠는 낮잠 자고 있는 딸의 주먹 속에 배인 땀을 본다. 자신의 어려움이 딸에게 전해질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정밀한 기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