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4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며 “대화의 장으로 복귀해 달라”고 촉구했다. 불법파업 엄정대응 기조를 유지해온 윤석열정부가 개별 기업 노사 분쟁에 대해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장관은 이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선박 점거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자칫 노사 모두를 공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 3권은 합법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고 노사 갈등은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도록 위법한 선박점거를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부터 43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는 조합원 일부가 배를 만드는 독(dock)에서 선박을 점거했고, 이들 중 1명은 선박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고 스스로 가두는 ‘옥쇄 투쟁’ 중이다.
하청지회 핵심 요구사항은 임금 원상회복(30% 인상)과 단체교섭권 인정이다. 이들은 하청업체가 그동안 ‘원청에서 기성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온 만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대주주 산업은행, 산업은행을 통해 사실상 대우조선을 소유한 정부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청지회 조합원 3명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사측은 공권력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공권력 투입 논란 없이 당사자가 자율적이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호소하는 것이 담화문의 취지”라고 말했다. 고용부 장관이 쟁의행위를 중단시키는 긴급조정 역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섭 당사자가 누군지 묻는 질문에 “기본적인 노사 관계 당사자는 하청의 노사”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파업으로 누적된 손실을 5700억원으로 추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점거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교섭을 지원하겠지만 위법 행위가 계속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대응 기조를 재차 밝혔다.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가족, 거제시민들은 이날 독 점거 철수를 요구하는 ‘인간 띠잇기’ 행사를 벌였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노노(勞勞)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조합원들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하청지회만 지지한다며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형 노조로 전환하기 위한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총회에서 재적인원 과반이 투표해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금속노조 탈퇴가 결정된다. 반면 금속노조는 이날 ‘기어 중립에 놓고 핸들은 사측으로 꺾는 정부’라는 성명을 내고 산업은행과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오는 20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세종=박상은 기자